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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봄비는 그래도 단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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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봄비는 그래도 단비다

입력
2010.04.28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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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느 방송에서 '비가 잦은 올 봄, 나무들이 빛 부족으로 힘들지 않을까요' 라는 물음에 '물론 아니에요. 자연은 그렇게 나약하지 않아요' 라고 사뭇 신이라도 난 기색으로 대답한 사실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올해 봄 기상은 최근 40년 동안 최악이라고 한다. 예년의 73%밖에 되지 않는 일조량과 저온 현상으로 과실이 여물지 못하고 채소 모종이 자라지 못해 자연 재해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도시민은 비싼 농산물에 마음이 움츠러들고 시설 재배 농민들은 한해 농사를 망쳐 애가 탄다. 사람 스스로에게 이런 봄 날씨 정도야 약간 불편할 따름이지만, 자연 조건이 경제와 맞물릴 때 우리의 해석은 혼란스럽다.

반면, 자주 내리는 비 탓에 산야의 초록은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고 있다. 기실 봄의 생명들에게 빛과 물은 둘 다 절대적이다. 춘분이 지나면서 봄빛이란 저절로 길고 강해지는 것이 분명하고, 또한 야생의 자연에서 빛은 어차피 불평등한 것이기에 생명들은 그다지 빛의 약하고 강함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예년 수준의 73%라는 빛의 량에도 야생의 식물들은 흡족할 따름이다. 반면에 봄의 물기란 늘 부족한 것이기에, 올해처럼 봄비가 충분히 내리면 누구의 말대로 식물들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지르며 환호한다.

자연조건은 야생의 식물들에게나 인간사회에나 똑같이 불안정하고 위험하다. 불확실한 자연조건은 어쩌면 식물에게 훨씬 가혹할지도 모른다. 비정상적인 물이나 빛 조건은 식물 조직의 일부를 날려버리거나 성장을 중지시키거나 아예 생을 송두리째 앗아간다. 매년 새로 성장하는 초본들과 달리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 나무들은 그 고통의 흔적을 나이테에, 가지 마디에 고스란히 새긴다. 그나마 기록으로 남기는 정도면 다행이겠다. 환경 악화로 인한 생장력 감소는 곧이어 저항성의 약화를 유발하고 병이나 해충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힘을 잃게 된다.

그러나 초본이든 나무든 살아남는 개체는 궁극적으로 불행을 극복할 강한 힘을 얻게 된다. 서로 다른 시련에 살아남은 서로 다른 강자들로 인해 식물 사회는 늘 부족함이 채워진다. 결국 야생의 생명들이 강인함을 갖추게 되는 과정에는 인간에게는 도저히 요구할 수 없는 극단적인 희생이 포함되어 있다.

이와 달리 자연의 불확실성 앞에 인간이 겪게 되는 불행은 그 어떤 예비나 여분이 있을 수 없다. 인간 모두는 똑같이 불행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자연의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인간이 문명을 일으키는 과정은 자연의 한계를 극복하고 궁극적으로 자연을 인간의 편으로 만드는 기술을 발달시키는 과정이었다.

씁쓸한 사실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자연이라고 보고 믿는 것들이 사실은 완전한 자연이 아니거나 인간에 의해 변형돼 완화된 자연일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대부분은 자연의 희생을 담보로 이루어졌다. 자연의 조건이 극단적일 수록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 역시 극단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며 자연의 희생 역시 극단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기술은 자연을 극복함과 동시에 자연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진보해야 한다.

요 며칠간의 물기 정도야 한낮의 봄빛과 바람 정도면 다 날릴 것이다. 그러니 때 이른 이 잦은 비가 오히려 아깝기 그지없다. 모내기 철이면 어김없이 논물에 대한 근심이 되풀이 된 이 땅에서 조금 과한 봄비에 대한 걱정이 또한 걱정이다. 봄비가 행여 노여워 할까 봐.

차윤정 생태전문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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