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브루스 리가 돌아왔다!"
동티모르 로스팔로스시(市) 소모초 마을. 수도 딜리에서 동쪽으로 248㎞떨어진 이곳에서 '브루스 리'를 모르면 '간첩'이다. 적어도 그 마을에서만큼은, 국제지역개발 NGO인 지구촌 나눔운동(이하 나눔운동) 소속 이창덕(29)씨의 인기와 명성은 용쟁호투'의 브루스 리를 능가한다.
지난 5일 오후, 떠난 지 1년 만에 다시 그가 그 마을을 찾았을 때 동네 아이들은 열광하며 그에게 몰려들었고, 그는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꼬옥 껴안으며 일일이 볼에 입을 맞췄다. 매일 아침 물을 길으러 마을에서 4㎞ 떨어진 공동수도시설까지 함께 오가는 등 노동과 놀이로 맺어진 친구들이라고 했다. 이들의 포옹은 섭씨 40도의 날씨보다도 더 뜨거웠다.
개도국 주민들의 주도적인 참여에 기반한 구호활동. 일컬어 '국제개발'에 관심이 많았던 이씨가 소모초 마을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은 2007년 4월.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단기 자원활동을 하며 지역개발 전문가를 꿈꾸던 대학생(성공회대 사회복지학) 이씨는 졸업 하자마자 나눔운동의 NGO봉사단으로 동티모르행 비행기를 탔다. 현장체험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었다고 했다. "단체에서 첫 동티모르 파견이라 두려움도 있었지만 잘 할 자신 있었어요." '브루스 리'라는 이름도 초보인 그가 무술의 대부인 이소룡(브루스 리)처럼 전문가가 돼 빛을 발하고 싶어 야심 차게 지은 이름이다.
동티모르는 1인당 GDP 364달러(농촌 150달러)의 지구촌 최빈국이다. 더욱이 소모초 마을은 땔감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절대빈곤 지역. 전기도 물도 들어오지 않아 정부가 경제낙후지역으로 지정한 곳이었다. 아이들은 1시간을 걸어 등교했고, 매일 왕복 8㎞를 오가며 식수를 날랐다. "40분씩 걸어 물을 받으면 올 때는 1시간 30분이 걸려요. 아침마다 녹초가 돼 뻗었죠.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이면 양동이 대접 물컵 할 것 없이 일렬로 쭉 늘어 놓았어요. 그럼 하루 안 걸어도 되니까 얼마나 신났는데요."
이씨는 주민들과 함께 집집마다 지붕 밑에 PVC파이프를 이용한 집수장치를 설치했고, 마을에 수도시설도 마련했다. 나눔운동 지원으로 트럭을 개조한 '행복버스'를 만들어 아이들 통학 등에 활용했다. 주민들에게서 돼지 228마리, 닭 104마리를 구입해 원하는 주민들에게 싼값에 되팔아 사육하도록 하는 소득 증대 사업 '가축은행'도 시작했다.
난관도 있었다. "'행복기금'이라는 걸 조성할 때였어요. 어린이(25센트, 약 300원), 어른(75센트, 약 900원)에게 받는 버스 운임, 가축을 판 돈 등으로 마을 자치기금을 조성했는데 주민들이 그게 의심스러웠던가 봐요."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 '브루스 리가 모은 돈을 한국에 보낸다' '(브루스 리가) 원래 중국인인데 돈 벌려고 장사하는 거다'라는 말들이 나돌더라는 거였다. 이씨는 "남녀 주민대표 1명씩을 뽑아 기금 관리를 위임했고, 매달 주민회의를 소집해 수입 내역을 공개했죠. 금세 오해가 풀렸고, 신뢰가 쌓이더군요."
2년간 현지 활동을 마치고 현재는 나눔운동 교육간사로 국내 대학을 순회하며 개도국에서의 지역개발사업을 알리고 있는 이씨가 이달 초 그 마을을 다시 방문한 것은 한 방송국의 현장 봉사체험 프로 출연을 위해서였다. "우리가 하는 일을 알리자는 목적도 있었지만, 마을 주민들과 어린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 욕심이 더 컸어요."
활동의 성과가 많더냐고 묻자 그는 검지손가락을 펴 보였다. "100년이 걸린다는 의미예요.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구호활동은 장기적으로 주민들의 자립을 이끌어내지 못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만큼 상호간 믿음이 중요하죠. 그게 현재로서는 가장 큰 성과예요."아이들과의 빈틈 없는 포옹과 주민들이 선사한 가멸찬 웃음이, 그와 나눔운동이 맺어온 성공의 증거이자 희망이라는 말이었다.
글ㆍ사진=박민식 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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