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이계성 칼럼] 남북관계와 새로운 상상력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이계성 칼럼] 남북관계와 새로운 상상력

입력
2010.04.28 11:51
0 0

천안함 장병들을 떠나 보내야 하는 아침에 남북관계의 엄중한 현실을 착잡하게 되돌아 본다. 천안함 침몰이 추정대로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진다면 남북관계는 장기간 파탄 국면을 피하기 어렵다. 구체적 물증을 확보하지 못해 영구미제가 된다 해도 북한 소행의 심증이 짙다면 상황은 별로 다를 게 없다. 북한과 무관하다 해도 생떼 같은 젊은 생명들의 희생은 한반도 분단현실과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운 만큼 남북관계에 그림자를 드리울 수밖에 없다.

그들의 희생이 헛되도록 하지 않기 위해서는 할 일이 많다. 허점이 드러난 안보태세를 보완하고 분초를 다투는 급박한 안보상황에서 허둥댄 시스템 부재와 기강 문제도 다잡아야 한다. 북한의 잠수함과 잠수정이 판을 치는 서해에서 이를 탐지하는 능력이 50%가 되니 마니 하는 수준이라면 말이 안 된다.

안보태세 철저한 점검 필요

그 동안 우리 함정과 장병들은 북한 잠수함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었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많은 예산이 들어간다 해도 대잠 능력의 대폭 강화를 포함한 해군력의 획기적 증강보다 더 급한 일이 있을 수 없다. 전력과 시스템, 기강에 걸쳐 광범위하고도 철저한 점검과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는 아니다. 남북의 대결과 긴장의 파고를 높이는 것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측이 안보태세와 전력을 강화하면 북측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은 뻔하다. 재래식 전력경쟁에서 상대가 안 된다면 당연히 비대칭 전력을 강화할 것이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 분명하다면 몇 차례 수상함 전투에서 도저히 남측의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절감하고 비대칭 수단을 택한 결과일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대북 전력을 강화한다 해도 비대칭 수단의 사용 여지가 있다면 전력 강화는 끝 없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뿐이다.

요즘 북한의 동향은 심상치 않다. 금강산 관광지구의 남측 재산의 몰수 내지 동결 조치 강행은 남측의 관광 재개를 이끌어내기 위한 단순한 압박 수준을 넘어선다. 남측과의 관계 개선에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는 징후로 보이기 때문이다. 교류와 협력을 통한 평화공존의 상징이었던 금강산관광이 영영 막을 내렸다고 보는 게 사실에 더 가깝다. 그 여파는 개성공단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북한의 핵 보유국 기정사실화 움직임도 불길하다. "핵 보유국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국제적인 핵군축 노력에 참가할 것"이라는 최근 북한 외무성의 비망록은 가당치 않은 주장이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으로 6자회담 재개 전망이 더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북한의 핵 능력 증가를 제어할 이렇다 할 방법이 없다. 북한은 이 틈을 타 6자회담의 기본 틀인 핵 폐기와 체제 보장 및 경제지원을 교환하는 방식이 아니라 핵보유국 지위 확보를 통한 국가 생존전략을 추구하는 이른바 '플랜 B 전략'을 굳히고 있는 게 아닌가 여겨진다.

천안함 침몰이 북의 소행으로 밝혀지면 응당한 대응조치는 불가피하다. 현재 우리 사회의 분위기상 군사적 조치를 제외한다면 북한의 도발을 응징하기 위한 긴장 고조는 어느 정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해 유엔안보리에 회부하고 새로운 대북제재를 가하는 방안도 시도될 것이다.

단선적 강경 대응 넘어서야

그러나 이미 유엔 안보리의 강도 높은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에 추가적 압력을 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아직 진행되고 있는 남북교역 중단의 효과도 제한적이다. 이미 많은 대북지렛대를 잃어버린 지금 북한을 응징할 조치가 제한돼 있다는 것은 허탈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상식과 원칙에 입각해 남북관계를 재정립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의욕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원칙만을 앞세운 단선적 강경 노선으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1990년대 이전의 대결시대와 같은 남북관계 파탄의 장기화를 막으려면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슬픔과 분노를 넘어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안정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천안함 장병들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는 길이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