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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이후…안보태세 긴급진단] 1. 신뢰 잃은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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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이후…안보태세 긴급진단] 1. 신뢰 잃은 군

입력
2010.04.27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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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쉬' 관행이 "못 믿어" 부메랑으로

천안함 침몰로 군이 방향타를 잃은 채 총체적 위기에 빠졌다. 서해 경계 태세와 국가 차원의 위기관리 시스템이 허점을 드러내면서 수술대에 올랐고, 잦은 말 바꾸기로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다. 내부 지휘 체계 혼선, 책임 전가, 기강 해이 등 치부도 고스란히 노출했다. 46명 장병들의 숭고한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5회에 걸쳐 군의 문제점을 짚어 보고 대안도 모색해 본다.

"천안함은 바다에 빠졌고, 군은 불신의 늪에 빠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7일 천안함 침몰 이후 군이 처한 상황을 이렇게 비유했다. 경계나 작전의 실패도 책임이 크지만 군 스스로 국민에게 등을 돌리면서 더 큰 화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사고 발생 시각 오락가락

군은 사고 이후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다. 조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사고 시각을 확정하지 못하고 말을 계속 바꾸며 허둥댔다. 자연히 군에 대한 믿음은 깨졌고 의혹은 커져만 갔다.

합동참모본부는 사고 당일인 3월 26일에는 사고 시각을 오후 9시45분께라고 발표했다. 군은 27일 국회 국방위원회 보고에서 9시30분께,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29일 국방위 답변에서 9시25분께라고 밝혔다. 사고 1주일째인 이달 1일에서야 사고 시각을 9시22분께로 확정했다. 최초 발표와 무려 23분 차이다. 특히 군은 사고 다음 날 한국지질자원연구원으로부터 리히터 규모 1.5에 해당하는 지진이 9시21분58초에 감지됐다는 보고를 받고서도 공개하지 않고 묵살했다(본보 3일자 1면). 군이 강조하는 보고의 신속성과 정확성 모두에서 형편없었던 셈이다.

TOD 늑장 공개로 망신

국방부는 백령도 해안초소에 설치한 열상감시장비(TOD) 화면 공개를 미루다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군은 여론이 거세지자 지난달 30일 마지못해 1분20초 분량의 편집본을 공개했다. 하지만 뿌연 화면에는 해군 고속정이 도착해 주위를 맴도는 모습이 전부였다. 이후 은폐 의혹이 제기되자 이틀 뒤인 1일 40여분 분량의 원본 영상을 공개했다.

그러나 여전히 사고 당시의 장면은 없었고 의혹은 또다시 불거졌다. 이에 군은 7일 함수(艦首)와 함미(艦尾)가 절단돼 침몰하기 직전의 화면을 추가로 공개했다. 초병이 수동으로 녹화한 기존 동영상과 달리 이번에는 해당 부대 상황실에서 자동으로 녹화한 화면이었다. 이 과정에서 군은 "TOD에 자동 녹화 기능이 있는지 몰랐다"고 발뺌했다. TOD는 대당 1억8,000만원 상당의 고가 장비인데도 사용법을 몰랐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걸핏하면 군사 기밀

군이 기밀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고무줄 잣대가 문제였다. 김학송 국회 국방위원장이 5일 천안함 침몰 전후로 군이 포착한 북한 잠수함의 기동일지를 공개하자 군은 발칵 뒤집어졌다. 이날 합참 고위 관계자의 대면 보고 내용을 그대로 언론에 공개한 데 따른 불만이었다. 국방부 원태재 대변인은 6일 "기밀이 무분별하게 노출돼 심히 우려된다"며 김 위원장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8일 "군의 답변 내용은 언론 공개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대북 특별취급(SI) 정보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군은 아무 대응 없이 꼬리를 내렸다. 오히려 합참은 9일 국회 보고에서 "언론 공개된 내용은 작전에 큰 영향을 미칠 만한 정보가 아니다"고 딴소리를 했다.

군의 이중잣대도 문제였다. 국방부는 '기밀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지적이 빗발치자 "언론과 대화할 때 보호하는 것이 기밀"이라며 명확한 기준이 없음을 자인했다. 그럼에도 천안함 실종자 가족들의 요구로 공개한 선체 단면도가 언론에 보도된 것에 대해 "마구잡이식 보도가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천안함보다 규모가 큰 구축함과 상륙함의 내부 사진도 이미 인터넷에 공개됐는데 말이다. 군은 또 인터넷 사이트 구글에 해군 2함대 위성사진이 게재되자 "군 부대가 뚫렸다"고 발끈했다가 이후 구글에 북한 잠수함 기지의 선명한 모습이 포착되자 "유익한 정보"라고 말을 바꿨다.

이에 대해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인터넷 등을 통해 누구나 찾을 수 있는 정보는 더 이상 기밀이 아니다"며 "군이 시간에 따라 기밀을 신속하게 업데이트하지 않고 타성에 젖어 무조건 숨기려는 듯한 모습만 보여서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합조단은 어디 숨겼나

이명박 대통령은 6일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장을 민간 전문가가 맡도록 하라. 그래야 신뢰를 얻는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군은 11일 윤덕용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를 단장으로 위촉하면서 언론에 대대적으로 공개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군은 정작 궁금한 합조단 구성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분야별로 몇 명의 위원이 배정돼 있는지조차 군사 기밀繭窄?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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