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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전의 문화재 다시보기] <32> 군사보호 구역 발견 고려벽화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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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전의 문화재 다시보기] <32> 군사보호 구역 발견 고려벽화무덤

입력
2010.04.27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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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지역의 군사보호구역에서 1981년 남북 분단 후 최초로 벽화가 있는 고려시대 무덤이 발견되었다. 파주시 진동면 서곡리 산 112번지에 있는 한 무덤이었다.

이 해 여름 파주의 군사보호구역내에 벽화무덤이 있다는 제보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실장 앞으로 날아들었다. 이 제보는 당시 문화부장관에게 곧바로 보고되었다. 장관은 문화재관리국장(현 문화재청장)에게 발굴조사 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에 따라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주축이 되어 중앙박물관 학예실장을 단장으로 발굴단을 조직해서 조사에 들어갔다. 발굴대상이 있는 곳은 비무장지대에 가까운 군사보호구역이어서 민간인의 출입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국방부의 협조를 얻어 매일매일 신고를 거쳐야만 현장에 접근 할 수 있었다. 위치상으로 본다면 고려수도였던 개경(지금의 개성)에 가까웠다.

발굴조사를 위해 무덤을 처음 찾았을 때 무덤 앞에는 文烈公韓尙質之墓(문열공한상질지묘)라고 쓰인 묘비가 있어 주인공이 한상질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는 조선이 개국되고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 朝鮮(조선)이라는 나라 이름을 받아온 개국공신으로 1400년에 죽었다. 뿐 아니라 조선 세조를 도와 정난공신으로 영의정까지 벼슬을 지낸 韓明澮(한명회)의 할아버지가 되는 사람이다. 이 묘갈 때문에 아무도 무덤의 주인공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도굴로 말미암아 무덤의 주인공이 바뀌는 결과를 가져왔다. 벽화무덤을 조사하는 과정에 도굴자가 버리고 간 墓誌石(묘지석)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묘 앞에는 한상질의 묘비가 있고 묘 안에 묻었던 지석은 權準(권준)의 무덤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청주한씨 문중의 윗대 무덤이 안동귄씨의 윗대무덤으로 바뀌는 황당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벽화조사가 결과적으로 무덤 주인 찾는 조사가 된 셈이다.

지석을 번역해 본 결과 무덤의 주인공인 권준은 1352년 즉 한상질보다 48년 앞서 죽었고. 한상질의 어머니가 권준의 손녀임을 알게 했다. 말하자면 권준은 한상질의 외증조할아버지였다. 어쨌거나 이 묘지석의 발견은 청주한씨 문중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모셔 온 윗대의 조상무덤이 황당하게도 권씨 집안의 무덤으로 밝혀지자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무덤을 잃었던 권씨의 경우 윗대의 조상무덤을 찾은 반면 청주한씨 문중은 황당하게도 지금까지 모셔온 윗대의 무덤을 잃는 결과를 가져왔다. 벽화의 내용을 보면 개성을 중심으로 한 왕릉급의 기본을 따르고 있는데 인물그림의 머리에 12지상을 그렸다. 이 무덤벽화는 무덤의 주인공이 권준인 경우 고려시대벽화가 되지만 한상질의 경우 조선시대의 벽화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하나의 무덤벽화를 두고 시대가 엉뚱하게 될 소지도 다분히 있었던 것이다. 바꿔 말하면 묘지석이 출토되지 않았다면 조선시대 한상질의 묘가 되어 벽화는 조선초기의 벽화로 자리매김 되었을 것이다. 묘지석의 발견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일깨워 준 조사였다.

경기문화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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