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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먹다 남은 배낭 속 반병의 술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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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먹다 남은 배낭 속 반병의 술까지도

입력
2010.04.27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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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 깔린 대로는 아닐 거야,

장미로 덮인 꽃길도 아니겠지,

진탕도 있고 먼지도 이는 길을

이 세상에서처럼 터덜터덜 걸어가겠지,

두런두런 사람들 지껄이는 소리 들리고

굴비 굽는 비릿한 냄새 풍기는 골목을,

잊었을 거야 이 세상에서의 일은,

먹다 남은 배낭 속 반병의 술까지도.

무언가 조금은 슬픈 생각에 잠겨서,

또 조금은 즐거운 생각에 잠겨서,

조금은 지쳐서 이 세상에서처럼.

● 이제야 알게 된 건, 나이가 들어도 지금처럼 살 수만 있다면 그건 잘 산 인생이리라는 사실입니다. 지금처럼 어린 딸과 많이 놀고, 지금처럼 안타까워하고, 지금처럼 분노할 수 있다면. 일에 시달려서 때로 도망치고 싶기도 하고, 다시 주먹을 불끈 쥐고 도전해보기로 하고, 실패하고, 그래 봐야 인생은 하나도 달라지는 것 같지 않아서 얼마간 좀 시큰둥해지고, 다시 힘을 내고. 그런 식으로 할아버지가 될 수 있다면.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텔레비전 같은 걸 보면서 말년을 사는 것보다는, 지금처럼 계속 살 수만 있다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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