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에서 요즘 이명박 대통령의 인기는 썩 좋은 편이 아니다. 나라 안으로는 4대강 사업을 발주하고, 밖에선 원전까지 수주해 엄청난 일감을 안겨줬지만, 그래도 건설업계는 불만이 꽤 많은 것 같다.
물론 취임 초엔 달랐다. 건설사CEO 출신 대통령을 맞았으니, 업계의 기대감은 최고조였다. 업계는 노무현정부 5년의 암흑기가 가고, 마침내 '건설 르네상스'가 도래한 양 박수를 쏟아냈다.
하지만 기대는 이내 실망으로 바뀌었다. 분양가상한제도 총부채상환비율(DTI)규제도 영영 사라질 줄 알았는데, 곳곳에서 재건축이 쏟아지고 용적률이 쑥쑥 올라갈 줄 알았는데, 대신 '구조조정'같은 얘기는 아예 안 나올 줄 알았는데, 전혀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서울ㆍ수도권 알짜배기 땅에 도저히 경쟁할 수 없는 반값아파트(보금자리주택)까지 대량으로 지어지고 있으니, 건설업계는 정부가 야속하다 못해 미울 지경일 것이다. 오죽하면 업계에서 이 대통령을 두고 "아는 분이 더하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을까.
따지고 보면 업계의 기대는 애초 오산이었다. 업계가 이 대통령에게 바란 것은 건설경기 활성화가 아니라, 버블의 묵인이었다. 실수요 촉진 정도가 아니라 가수요 용인까지 원했던 것이다. 아무리 건설사 출신 대통령이라도, 이런 것을 어떻게 받아줄 수 있단 말인지.
업계의 불만은 지난 주 미분양해소 대책이 나온 뒤에도 멈추질 않고 있다. 지방 미분양주택을 정부가 3조원이나 들여 사주기로 했지만 ▦너무 헐값이다 ▦수도권도 사줘야 한다 ▦DTI규제까지 풀어라 며 계속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실 미분양은 재고품이다. 팔리지 않는다고 해서 국민세금으로 사주는 제품이 아파트 말고 또 있을까. 미분양에 건설업계가, 그리고 한국경제가 발목 잡힌 탓이겠지만 어쨌든 이번 조치는 '획기적'을 넘어 '비시장적' 성격이 짙다.
어떤 기업이든 재고가 쌓이면 가격을 낮춰 판다. 한정세일, 바겐세일로도 안되면, '땡처리'도 마다치 않는다. 그런 기업 스스로의 눈물겨운 과정은 생략한 채 정부가 국민세금을 투입하는 게 과연 타당한지도 따져봐야 하겠지만, 어쨌든 그것도 모자라 추가대책을 요구하는 업계 태도는 '떼' 수준이라 해야겠다. 하기야 '울면 결국은 떡을 주는 게' 지난 역사였고, 이 점에서 정부가 업계를 그렇게 키운 것이나 다름없다. 그 결과, 미분양 대책은 언제나 '도마뱀 꼬리 자르기' 이상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도, 재고품에 혈세까지 쏟아 붓게 된 이 순간에도 여전히 아파트는 지어지고 있다. 미분양이 될게 거의 뻔한 곳에서도 말이다. 그리고는 '예상대로' 미분양이 생기면 또 대책을 요구할 텐데, 이젠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리고 누구보다 건설사의 생리를 잘 아는 이 대통령이 하는 게 가장 옳고, 또 확실하다고 본다.
이번 대책을 마련하면서, 이 대통령은 건설사의 도덕적 해이를 강하게 질타했다고 한다. 워낙 어렵다니 지원은 하되, 무분별한 투자로 미분양을 양산한 건설사의 책임은 반드시 가려야 한다는 얘기였다. 건설사들은 또 한번 실망했겠지만, 이 문제만큼은 이 대통령이 업계로부터 '철저히 인기 없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이성철 경제부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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