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똑똑한 전력망' 20년 안에 나라 전체에 깔린다
제주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지능형 전력망(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 조성 현장. 바닷가를 배경으로 풍력발전기 5개가 '슝, 슝' 소리를 내며 시원스레 돌아가고 태양전지들이 무리 지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옆에서는 터 닦기 등 기초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 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최첨단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가 들어선다.
공사를 맡은 한국전력은 올해 10월까지 '살아있는 종합 홍보체험관'을 완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앞서 8일에는 임시 홍보관이 문을 열었다. 특히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 회의를 맞아 한국을 찾는 세계 주요 인사들이 한국 스마트그리드의 앞선 기술력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정부는 지난해 2월 녹색 성장의 핵심 인프라로 스마트그리드를 선정했다. 정부는 2030년까지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의 발전 비중을 11%까지 높이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신재생에너지가 날씨 등 외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다 보니 불안정하고, 품질이 낮다는 단점이 과제로 떠올랐다. 이 같은 신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 기존 전력망을 보완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고 그 해결책으로 스마트그리드가 떠오른 것이다. 스마트그리드가 틀을 갖추면 일반 가정에 실시간으로 요금 정보를 제공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발전소 건설 비용도 절약할 수 있을 것도 보인다.
특히 정부는 전 세계에서 빠르게 성장 중인 스마트그리드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계획이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전력, 중전기기, 가전, 통신 등에서 우리에게는 세계 일류 기업들이 여럿 있기 때문에 이들이 어우러진 스마트그리드에서도 상당한 경쟁력을 지닐 것"이라며 "68조원 규모의 스마트그리드 산업 시장 창출을 통해 국내에만 50만 개의 일자리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곳 구좌읍 6,000가구를 대상으로 계획된 실증단지는 이런 계획의 첫 단추로, 스마트그리드의 실제 적용을 통해 문제점을 발견하고 기술 보완을 위한 것이다. 한전 관계자는 "내년 5월이면 전기자동차 충전 인프라 등 겉모습이 갖춰질 것"이라며 "이후 시스템을 운영하며 자료를 모으고 문제점을 보완해 2013년 11월 사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2030년까지 국가 전체에 스마트그리드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미 ▦스마트 파워그리드 ▦스마트 플레이스 ▦스마트 트랜스포테이션 ▦스마트 신재생에너지 ▦스마트 전력 서비스 등 5개 분야에 전력ㆍ통신ㆍ자동차ㆍ가전 등 관련 기업 171개가 참여한 12개 컨소시엄도 꾸렸고, 지능형 전략망 촉진법 제정도 추진 중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총 3,000억 원 규모의 투자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관련 기업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LS그룹은 20일 중국 내 첫 스마트그리드 단지 조성에 나선 장쑤성 양저우 시와 MOU를 맺었다. 이 회사는 LS전선, LS산전, LS엠트론 등 스마트그리드 관련 계열사들이 뭉쳐 시너지를 만든 후 이를 바탕으로 중국 정부가 2020년까지 약 700조 원 규모로 추진 중인 스마트그리드 프로젝트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계획이다. 한전은 삼성물산, 호주 전력공급 배전회사 에르곤에너지 등과 손잡고 호주 환경부 주관으로 3년 동안 진행하는 1,000억 원짜리 대형 프로젝트 'SGSC(Smart Grid, Smart City)' 사업의 최종 입찰에 참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효성은 초고압 변압기ㆍ차단기 등 해외에서 앞선 기술을 보유한 중전기기 제조 분야에서 해외 시장 개척에 열심이다. 스마트그리드를 구성하려면 초고압 전력을 수 천 ㎞까지 효율적으로 송전할 수 있는 중전기기가 필수인데, 효성은 이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독자적으로 개발한 가스절연개폐장치(GIS) 기술은 중전기기 중량과 공간을 10분의 1까지 줄일 수 있어 호응이 높다. 효성중공업 창원공장에서 만난 전력프로젝트 유닛(PU)의 송원표 상무는 "최근 빠르게 성장하는 인도 시장에서 독일 지멘스나 스위스 ABB 같은 유럽의 유명 기업들이 후발주자인 효성을 이기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기술력을 바탕으로 효성은 최근 종합 전력망 구축 능력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13일 카타르 도하에서 카타르 정부와 1,300억 원 규모의 전력망 사업 수주 계약을 맺었는데, 이 계약은 일괄입찰방식(EPC)으로 진행돼 의미가 컸다. 즉 카타르에 설치될 5기의 변전소를 설계부터 자재구매, 건설까지 모든 과정을 효성이 맡는 것으로, 전력망 구축 프로젝트에서 효성이 종합적으로 뛰어나다는 점을 인정받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 그 동안 세계 전력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해 온 유럽 기업들을 제치고 효성이 수주에 성공함에 따라 앞으로 중동ㆍ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초고압 전력 EPC사업에서 활동 폭을 더 넓힐 수 있게 됐다. 조현문 효성중공업 프로젝트그룹(PG)장은 "이번 수주로 송변전 기자재 생산뿐만 아니라 중동, 아프리카, 유럽, 러시아, 중남미의 EPC 사업을 진행해 에너지, 플랜트 분야에서 한 발 더 앞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세계 시장의 전망도 밝다. 지난해 전 세계 경기 위축 등으로 주춤했던(성장률 1.16%) 송ㆍ배전 기기 시장이 올 들어 3.95% 성장할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앞으로 성장세는 꾸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중전기기 설비 교체 시기와 맞물려 중동, 아프리카, 인도, 중국 등이 전력인프라 투자에 나선 것이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것이다. 지경부 관계자는 "최근 미국, 중국이 각각 45억 달러, 1,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며 "국제 에너지기구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시장 규모가 3조 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창원=강희경기자 kstar@hk.co.kr
■ 스마트그리드의 과제
'똑똑한 전력망'이라는 뜻의 스마트그리드(Smart Grid)는 전력망에 정보기술(IT)을 접목해 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하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차세대 전력망이다. 특히 전력 공급자와 소비자가 실시간 정보를 교환할 수 있어 효율적으로 전력을 쓸 수 있고 이산화탄소(CO2) 배출을 줄이는 등 장점도 많다.
그 동안 전력은 한전이 독점해온 상품이라면 스마트그리드는 소비자가 살 수도 팔 수도 있는 양방향 전력 시스템으로 보면 된다. 이것이 구축되면 100% 전기로 달리는 자동차가 나오고 전기 이용 량에 따라 알아서 켜지고 꺼지는 세탁기, 냉장고 등도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또 주식처럼 전기도 거래 대상이 돼, 쌀 때 샀다가 비쌀 때 팔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2005년부터 한국전력과 중전기기 제조기업 등을 중심으로 스마트그리드 관련전력 IT 기술 개발을 진행해 왔다. 특히 정부는 2월 스마트그리드 로드맵을 확정하고 올해 안에 스마트그리드 특별법을 만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지난해 2월 세계에서 처음 2030년까지 국가 전체에 스마트그리드 시스템을 갖추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한 이후 11개월 만이다. 여기에 지난해 7월 G8 확대 정상회의에서 스마트그리드 개발을 주도할 선도 국가로 뽑히는 등 짧은 시간에 큰 성과도 얻었다.
그러나 풀어야 할 과제도 여럿 있다. 무엇보다 스마트그리드 관련 표준화에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들은 10여 년 전부터 스마트그리드 기술 표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나라마다 풍력, 태양광, 전기자동차 등과 전력망의 접속ㆍ운영 및 관련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기술 표준을 선점하는 나라가 스마트그리드 시장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업계에서는 2030년 시장규모를 3조원가량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은 스마트그리드를 통한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 할 수 있도록 기술 개발에 나서 지역 별로 표준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은 민간기업이 표준화를 주도하고 있고 유럽도 유럽연합(EU) 회원국을 중심으로 표준화 작업이 한창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표준화 작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는 지적이다.
정부는 실증단지의 성과물을 바탕으로 스마트그리드 시범도시를 만들 계획인데, 한전(스마트그리드), 포스코(스마트 팩토리), 한국산업단지공단(스마트 산업 공단), 인천경제자유구역(스마트 경제자유구역) 등 여러 주체가 뿔뿔이 흩어져 진행하는 스마트그리드 관련 계획을 잡음없이 어떻게 한데로 모으느냐도 숙제로 떠오르고 있다.
또 정부의 계산대로라면 국가 단위 스마트그리드 구축에 필요한 27조5,000억 원 중 민간이 25조원 가량을 자발적으로 투자해야 하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 계획표는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송배전 보호, 스마트그리드 보완관제 기술 등 사이버 테러 등 보안 문제도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지만 제대로 된 해결책은 없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박상준기자
강희경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