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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기자의 Cine Mania] 전쟁의 아픔까지 보듬어 돈버는할리우드의상술

입력
2010.04.2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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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F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를 최근 관람했다. 1979년 만들어진 '지옥의 묵시록'에 49분 분량을 보태 2001년 새롭게 선보인 이 영화를 보며 상영시간 202분 내내 전율했다. 전쟁의 광기와 더불어, 베트남전 패배로 미국이 겪은 후유증이 '원판'보다 절절히 느껴졌던 것이다.

군을 이탈해 베트남 오지에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한 미치광이 커츠 대령(말론 브란도)을 처치하러 나선 윌라드 대위(마틴 쉰)의 여정은 전쟁의 어두운 실체를 까발린다. 목적지를 향하는 도중 윌라드가 만난 미군 중령 킬고어(로버트 듀발)는 호기롭게 외친다. "나는 아침 무렵의 네이팜탄 냄새가 너무 좋아." 네이팜탄을 쏘아대면서 베트콩 마을을 사냥할 때,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를 듣는 직업군인이다.

전쟁에 회의를 느끼는 윌라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정글에 있으면 집에 돌아갈 생각을 했고, 집에 있으면 정글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고 독백한다. 베트남전이라는 수렁에 빠진 군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전쟁광이 돼버린 것이다. 윌라드가 마지막 장면에서 속삭이듯 내뱉는 "공포…"라는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짧고 강렬하게 전쟁의 실체를 집약한 이 대사에 소름이 돋았다.

미국이 승리했다고 자부하는 이라크전을 배경으로 한 '허트 로커'도 전쟁이 남긴 후유증에 초점을 맞춘다. 어떤 위험도 아랑곳하지 않고 폭발물을 제거하려는 제임스 상사(제레미 레너)에게 전장은 놀이터이고, 폭발물 제거는 쾌락을 부르는 유희다. 그는 풍요롭고 질서정연하며 안전한 고국의 가정에서 오히려 혼란을 느낀다. 전쟁에 중독돼 헤어나지 못하는 제임스의 뒷모습은 '지옥의 묵시록'의 여러 인물들과 오버랩된다.

이들 두 영화뿐만이 아니다. 최근 국내에 잇달아 소개되는 이라크전, 아프간전 소재 영화들은 승리의 영광보다 고통스러운 전쟁의 이면을 들춘다. '굿바이 그레이스'는 살아 남은 가족의 슬픔을, '엘라의 계곡'은 전쟁의 부도덕성을 꾸짖는다. 상업영화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그린 존'도 결국 명분 없는 이라크전을 고발한다.

5월 5일 개봉하는 '브라더스'의 샘 대위(토비 맥과이어)는 끔찍한 비밀을 간직한 채 아프간전에서 돌아온 뒤 가슴 저미는 말을 남긴다. "죽은 자만이 전쟁의 끝을 본다던가? 난 전쟁의 끝을 봤다. 그런 내가 다시 살아갈 수 있을까?" 장대한 스펙터클만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전장의 아픔까지 보듬는 전쟁영화로 돈을 버는 할리우드의 상술이 놀랍고 부러울 따름이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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