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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화가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인터넷 후원모임 '아티스트 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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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화가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인터넷 후원모임 '아티스트 팬클럽'

입력
2010.04.25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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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하셨나요, 굳이 연필을 택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크기의 비율은 어떻게 정하셨나요."

쉴 틈 없이 쏟아지는 물음들. 화가는 난감하지만 행복했다. 언제 이런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질문은 진지하고 속 깊다. 언뜻 언론매체 기자의 인터뷰 같지만 질문공세를 퍼붓는 이들은 다름아닌 팬들이다. 젊은 작가치고는 이름깨나 알려졌고, 번듯한 유명 갤러리에서 개인전도 두 번이나 했지만 일반 관객 앞에 직접 나서는 것도, 누군가 작업실로 찾아오는 일도 드문 화가는 연신 머리를 긁적였다.

팬들의 화실 습격사건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젊은 작가들의 공동작업실인 '초아살롱' 한 구석에 마련된 작가 차영석(34)씨의 좁디 좁은 작업공간은 "얼굴 보고 얘기하자"고 들이닥친 팬들의 질문으로 후끈거렸다. 이들은 젊은 미술가를 응원하는 모임 '아티스트 팬클럽' 운영진이다.

머쓱하게 서있던 차씨가 '열혈 지지자'들에게 등 떠밀리듯 자신의 작품 '건강한 정물' 앞에 섰다. 팬들이 떼로 몰려와 작품세계를 묻는 전무한 사태가 영 믿기지 않는 듯 답들이 파르르 떨렸다.

"2005년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새 대학을 들어갔는데, 갑자기 그럴싸한 미술보다는 주변에 관심이 많아지더라고요. 장식장이나 화초 숯 등을 엉뚱하게 진열해놓은 사람들의 태도, 건강한 정물로 생각하고 배열했지만 실은 조악하기 그지 없는 풍경들을 가장 솔직한 재료인 연필로 재현하고 싶었어요."

차씨의 설명이 차근차근 이어지자 팬들은 입을 닫고 눈을 빛냈다. 꼼꼼히 받아 적는 팬들의 모습이 영락없이 기자다. 그도 그럴 것이 아티스트 팬클럽은 미대를 졸업하고 전업으로 삼았지만 이름을 떨치기까지 춥고 배고픈 작업을 이어갈 수 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젊은 작가를 만나 인터뷰하고, 웹진 형태로 인터넷카페(http://cafe.naver.com/artistfanclub)에 올리는 게 주된 일이다. 더 많은 '아트 홀릭'들이 응원과 환호를 보낼 수 있게 매달 떠오르는 젊은 작가를 소개하는 게 목표란다.

차씨와의 만남에서 나눈 얘기들도 소중한 기록으로 남아 아직 주목 받지 못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에게 힘이 될 것이다. 차씨는 경제적 곤란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클럽 회원들은 "이는 또래 젊은 작가들의 공통된 고민"이라고 했다. 그 고민을 조금이나마 풀어주려는 바람이 클럽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팬들이 작가를 키운다

2008년 개설된 클럽은 현재 등록 회원만 970여명. 회사원 학생 등 평범한 회원들은 인터뷰 기사 게시뿐 아니라 온라인 전시공간 제공, 각종 프로젝트를 위한 후원금 모금 등 갈수록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시작은 작은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카페 운영자인 정지연(33)씨는 2년 전 컨설팅 회사에서 문화사업을 기획하기 위해 미술시장을 조사하고, 갤러리를 찾아 다녔다. 그런데 작가의 꿈을 안고 미대를 다닌 수많은 청춘들이 막상 졸업 후에는 작업실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 작가가 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정씨는 "젊은 작가들은 아무리 치열하게 살아도 그 바닥의 주목을 끌기 까지는 어느 정도 기간이 필요한테 문제는 이때 지쳐서 나가떨어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라며 "이들의 열정과 집념이 지속되도록 응원하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정씨의 이러한 뜻은 파문처럼 퍼지고 있다. 올해 초엔 운영진을 공개 모집해 전문적인 운영체제를 갖췄다. 영상미술 전공자 문정민(30)씨와 한국회회사연구소의 오다연(29) 연구원, 미대 학생 김효리(23)씨 등이 함께 한 것이다. 정씨는 "누구나 그림을 즐길 수 있는데, 갤러리나 경매장의 문턱을 넘기 부담스러웠던 팬들이 나선 덕"이라고 했다. "기존 매체에서 알기 어려운 젊은 작가들의 깊은 속내를 소개하는 글을 기다리는 회원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물론 회원 중엔 젊은 작가들도 적지 않다. '책을 쌓다'라는 작품으로 이름을 알린 서유라(대화명 딸기우유)씨가 대표적이다.

정씨는 최근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티스트 팬클럽에 전념하고 있다. 더 큰 꿈을 꾸기 위해서다. 단순한 소개에서, 젊은 작가들이 일반 대중의 사랑만으로도 실제 이익을 창출할 수 있게 돕는 '소셜 벤처'(사회적 기업)로 팬클럽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우선 첫 개인전을 열지 못한 작가들을 초대해 '나의 첫 전시회'를 열어주는 게 올해 목표다. 회원들이 기증한 물건을 파는 '착한 경매'를 통해 기금을 조성하고 젊은 작가들을 초대할 계획이다.

전국을 찾아가는 버스 미술관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다. 일반인을 위해서는 서울에 집중된 갤러리를 대신할 공간을 마련하고, 젊은 작가들에게는 더 많은 전시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발상이다.

최근 버스미술活?마련하기 위한 1만원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달성목표인 1,000만원이 되려면 한참 모자라지만 프로젝트에 공감해 선뜻 10만원의 목돈(?)을 보내온 회원도 있다. 버스 미술관 프로젝트를 후원해줄 기업도 발굴하고 있다.

"작품을 파는 사람들보다 창작하는 작가들이 약자여선 안되잖아요. 일반인들이 더 쉽게 작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이 기회가 곧 수익이 될 때 아직 그 바닥 인정을 받지 못한 작가들도 창작을 지탱할 연료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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