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방문했던 오키나와의 공기는 서울과 달랐다. 세계적 휴양지답게 아열대 기후의 온화함과 바다의 싱그러운 기운이 온몸을 푸근하게 감쌌다. 하지만 거리 곳곳에는 후텐마(普天間) 미 해병대 비행장의 이전을 요구하는 플래카드들이 어지럽게 나붙었고, 주민들 표정에도 긴장감이 흘렀다. 현지 언론들은 5월 말로 예정된 하토야마 총리의 후텐마 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을 앞두고 주민들 움직임을 연일 톱뉴스로 보도했다. 25일 오후에도 수만 명의 주민들이 공설운동장에 모여 미군기지 이전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 오키나와는 2차 세계대전 최대의 격전지이다. 1945년 3월 말부터 3개월 동안 계속된 미군의 공격으로 전체 주민의 3분의 1인 9만4,000여명이 숨졌다. 패주하는 일본군에 의해 숨진 주민도 많았다. 일부 주민은 미국의 스파이로 몰려 처형 당했다. 오키나와는 1429년부터 독립 왕국으로 존속해오다 1879년 일본에 강제 합병됐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엔 27년 동안 미 군정의 통치를 받았다. 이 때문에 미군기지 확장에 따른 사유지 수용과 소음 등의 피해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인구 밀집지역에 있는 후텐마 기지는 피해가 더욱 심했다.
■ 오키나와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방어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이다. 주일 미군 4만 여명의 50% 이상, 일본 내 미군기지 52개 중 32개가 이곳에 있다. 미국은 9ㆍ11 사태 이후 불확실한 안보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전략적 유연성을 강조해왔다. 한반도 대만 등에서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6~48시간 내에 출동할 수 있는 1만8,000여 명의 해병대 병력은 오키나와 미군의 핵심이고, 후텐마 기지는 아태 지역 미 해병의 거점 비행장이다. 미국 입장에서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 밖으로 옮기는 것은 아태 방어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 미일 양국은 2006년 오키나와 북부의 해병대 캠프 주변 앞바다를 메워 기지를 이전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작년 8월 총선에서 오키나와 밖 이전을 공약으로 내건 민주당이 집권하면서 사태가 꼬이기 시작했다. 바다 매립에 따른 환경문제도 불거졌다. 무엇보다 연립여당의 한 축인 사민당이 공약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일본 본토인들은 미일 안보동맹의 핵심기지가 오키나와에 유지되기를 원하는 입장이다. 미국과의 갈등이 부각되면서 하토야마 지지율은 20%대까지 곤두박질했다. 이제 남은 기간은 한 달 남짓. "오키나와의 이해도 얻고, 미일 동맹도 손상하지 않겠다"는 그의 장담은 실현될 수 있을까?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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