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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희망이 따뜻한 세상을 만들겁니다" 포토옴니버스展 여는 양종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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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희망이 따뜻한 세상을 만들겁니다" 포토옴니버스展 여는 양종훈 교수

입력
2010.04.23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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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에서 가장 큰 종합병원이라는데 병실 구분도 없더군요. 산통으로 신음하는 산모가 칸막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일반 환자들과 나란히 누워있고, 바닥은 구정물로 질척거릴 정도였어요. 하지만 '응애응애'힘차게 울며 아이는 태어나더군요."

2003년 5월 동티모르 수도 딜리의 딜리병원. 독립기념일(5월20일)을 앞두고 그 곳을 찾은 다큐사진작가 양종훈(50) 상명대 대학원 디지털이미지학과 교수는 당시 찍은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이며 말문을 열었다. 사진 속에는 젊은 산모와 아이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갓 출산한 20대 산모는 아이를 배 위에 올려놓고 누워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데, 탈진한 듯 풀어놓은 표정 속에는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내고 난 뒤에 혼자 즐기는 호젓한 안도와 자부심도 배어 있었다.

"그 장면에서 전 희망을 본 것 같아요. 그래서 찍었어요. 카메라를 들고 동티모르를 찾아간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겁니다."하지만 동티모르 뿐일까. 그가 30년 가까이 다큐 사진작가로 누비며 산 거의 모든 시간과 공간이 동티모르에서 그가 본 희망의 이미지와 아스라히 포개져 있을 것이다. "사진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그가 지금껏 찍어 온 5만여 점의 작품 가운데 50여 편을 골라 28일부터 내달 4일까지 서울 명동성당에서 전시회를 연다. '양종훈의 포토옴니버스전'이다.

22일 연구실에서 만난 양 교수는 "이번 전시는 제 작품활동을 중간 결산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86년 지하철 풍경을 주제로 첫 개인전 'subway'를 연 이래 크고 작은 전시회를 29차례나 했고, 작품집 등 출간한 책만도 9권이다. "사진 고르는 게 너무 힘들어서 탈수증세까지 경험했어요." 그는, 너무 진부한 표현이라 피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어 겸연쩍다는 듯 웃으며 "한 점 한 점이 모두 자식 같아서…"라고 말했다.

1984년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뒤늦게, 사진학과(중앙대)에 진학할 정도로 까닭 없이 사진이 좋았다고 한다. 졸업하자마자 단김에 미국으로 유학(오하이오주립대 포토커뮤니케이션 전공)고, 90년 방학 중 잠시 나온 한국에서 그는 소년원을 찾아간다. 낯선 세상, 일상과 동떨어진 세상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갇혀 있는 사람들의 일상이 궁금해졌어요. 그런데 거긴 아무나 가볼 수 있는 데가 아니잖아요. 더구나 카메라를 들고는 더더욱…."

2주에 걸쳐 통사정을 했고, 얼굴은 안 찍는다, 외부에 사진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간신히 촬영 허락을 얻었다. 폭력조직원으로 지내다 들어왔다는 열아홉 소년, 3,000원짜리 육개장을 무전취식 해 끌려온 중3학생, 그리고 터무니없는 기준으로 정해지는 재소자간의 엄격한 위계와 폭력의 논리….

양 교수는 다큐 사진작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방학, 안식년, 학기 중간 가릴 것 없이 틈나는 대로 외부와 차단된 곳만 찾아 다녔다. 호주 북부에 따로 모여 사는 원주민 애보리진(2002년), 21세기 첫 독립국으로 비로소 세상에 알려진 동티모르(2003년), 인구의 70% 가량이 에이즈 환자이거나 보균자라 알려진 스와질랜드(2006년), 국내의 산간오지(2008) 등. "스와질랜드에 가겠다는 절 만류하는 가족을 설득하는 데 6개월이 걸렸고, 동티모르에서는 상록수 부대의 호위를 받기도 했어요."

그는 스와질랜드에서 만난, 20대 후반의 한 에이즈 감염자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 친구는 교통사고 현장을 우연히 지나가다 피범벅이 된 부상자를 도와줬을 뿐이래요. 그런데 상처가 있던 손에 그 혈액이 접촉된 겁니다. 어머니는 하도 울어 눈물이 말라버렸는지 멍하니 아들을 쳐다보고만 있고, 청년도 표정 없는, 넋 잃은 얼굴로 누워 있었어요. 몇 달 뒤 그 병원에 다시 찾아갔더니 청년은 사라졌더군요. 이 세상에서 사라진 거죠."하지만 그의 사진 속에는 남아 있었다. 청년이 겪은 특별한 비극과 인간이 겪는 일상의 슬픔의 모습으로.

양 교수는 그의 작품활동을 후원해온 유엔 관련 시민운동단체인 '한울안운동'과 함께 기금 모금에 나서 2006년 말부터 18개월간 1억 5,000여 만원의 돈을 마련, 스와질랜드에 에이즈 환자 자활센터를 건립했다. 2001년 소아암 환자를 주제로 전시회를 연 뒤 지인인 손학규 의원에게 '저소득층 소아암 환자에게 국가가 치료비를 지원해주자'고 건의해 관련 법을 개정토록 했다. 2007년부터는 시각 장애인을 대상으로 매년 사진교실을 열어 새로운 삶을 살도록 돕고 있다.

양 교수는 "다큐멘터리는 따뜻해야 합니다. 하지만 나아가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데 어떤 식으로든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은 거죠"라고 말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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