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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신의 용광로' 중세 이슬람의 콘비벤시아가 유럽을 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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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신의 용광로' 중세 이슬람의 콘비벤시아가 유럽을 주조했다

입력
2010.04.2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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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리버링 루이스 지음ㆍ이종인 옮김/책과함께 발행ㆍ672쪽ㆍ3만3,000원

유럽인들의 역사 서술에서 이슬람 문명의 역사는 흔히 각주처럼 취급된다. 그러나 8세기부터 16세기까지 장장 8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유럽 남부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한 이슬람 세력은 수학, 의학, 천문학 등 학문의 여러 분야에서 피렌체 산맥 동쪽의 기독교 문명권을 압도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슬람에 대한 유럽인들의 생래적 공포심 때문일까, 이 문명에 정당한 몫의 평가를 한 서구사 서술은 드물었다.

뉴욕대 역사학과 석좌교수인 데이비드 리버링 루이스의 <신의 용광로> 는 서구사에 새겨진 이슬람 문명의 모습을 꼼꼼히 추적한다. 이슬람 문명이 어떻게 꽃을 피웠고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기독교 문명권과의 관계는 어떠했는지를 두루 훑는다. 국내에는 서양 중세를 다룬 책도 드물뿐더러 그나마 14~15세기께의 중세를 다루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책이 6세기에서 13세기까지 중세의 전반을 조망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지은이는 이베리아 반도에 진출한 이슬람과 유럽의 기독교 문명이 처음으로 자웅을 겨뤘던 732년 10월 푸아티에 전투의 결과가 뒤바뀌었으면 유럽사의 흐름은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프랑크 왕국의 카를 마르텔이 이끌던 기독교군이 기세등등하던 코르도바의 아브드 알 라흐만의 사라센군을 백병전 끝에 격파한 것이 이 전투의 결과다. 서양사에서는 삼국지의 적벽대전에 비견될 정도로 중요한 비중으로 서술되는데, 대부분의 유럽인들의 머릿속에는 이 전투가 무슬림제국의 세계통일이라는 끔찍한 운명에서 유럽을 구명한 사건으로 각인돼있다. <로마제국 쇠망사> 를 쓴 에드워드 기번은 "만일 패배했더라면 지금쯤 옥스퍼드대학에서는 코란의 번역본을 가르칠 것이고, 설교사들은 할례받은 사람들에게 마호메트의 신성함과 진리를 증명하고 있을 것"이라고 썼을 정도다.

그러나 <신의 용광로> 의 지은이는 이 전투의 승리가 오히려 유럽사의 암혹기를 가져왔다는 입장에 서있다. 전쟁 이후 전개된 두 문명의 흐름을 관찰하면, 유럽은 이 승리의 대가로 300~400년 이상의 문명 후퇴라는 비용을 지불했다는 것이 논지다. 저자는 균형감을 잃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슬람 문명에는 호의를, 기독교 문명에는 냉담함을 표시한다. 가령 기독교 문명권의 프랑크왕국은 푸아티에 전투 이후 수세기 동안 끊임없이 전쟁에 시달린 곳, 미신이 종교로 통하고 지식의 불꽃은 희미했던 곳으로 그려진다. 반면 이슬람의 우마이야 왕조가 지배한 이베리아 반도는 같은 시기 문학과 과학이 성숙했고 국방은 잘 정비됐으며 종교적 관용이 베풀어진 곳으로 그려진다.

이런 격차의 원인으로 저자가 지목하는 것은 '콘비벤시아'(convivencia)라는 용어로 표현되는, 이슬람 문명의 개방성이다. 기독교 이외의 종교는 모두 배척됐던 피렌체 산맥 동쪽과는 달리 무슬림, 유대인, 기독교인의 공존을 허용한 이슬람 지배자들의 정책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문명이 꽃피는 데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다. 이슬람 순수주의자부터 가톨릭 광신주의자까지 독단적인 사람들이 용납됐고 사제 이외에도 변호사, 천문학자, 의사, 관료, 재봉사 등 다양한 전문직업인들이 활동했던 9~10세기의 이슬람 세계를 지은이는 "갖가지 의미에서 모더니티(현대성)의 예고편"이라고 평가한다

풍부한 사례와 지구력 있는 서술로 이슬람 세계와 기독교 유럽을 대비시킨 희귀한 중세사라는 점도 가치가 있지만,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은 공존할 수 없는가"라는 21세기의 시대사적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현재적 가치가 있다. 이질적 종교와 문명에 대해 열려 있다면 그 문명은 발전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쇠락할 수밖에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저자는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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