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림 시인의 부고를 휴대폰 문자로 받았다. 가슴 속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학청년 시절 시인의 시를 밑줄을 치며 뜨겁게 읽었다. '나무들이 일전(日前)의 폭풍처럼 흔들리고 있다'로 시작하여, '하체(下體)를 나부끼며 해안의 아이들이 무심히 선 바닷속에서'로 끝나는 그 긴 시, 시인의 신춘문예 당선작 '빈약한 올페의 회상'을 자주 읽었다.
올페는 오르페우스,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찾아 지하세계로 간 신화 속의 주인공. 이제 시인도 인연의 무거운 짐을 놓고 편안하게 돌아갔으리. 시인을 처음 뵌 것은 1980년대 말, 대학로에 있었던 Y출판사에서다. 시인의 뒤를 이어 그 출판사 주간을 맡게 된, 부산서 상경한 최영철 시인의 소개로 인사를 드렸다.
시인은 전날 과음으로 술 냄새를 풀풀 날리던 우리 두 사람에게 해장이나 하자며 우거짓국을 사주었다. 나는 술병으로 속이 쓰려 그릇을 다 비우지 못했다. 시인과의 마지막 만남도 첫 만남처럼 세 사람이 함께 했다. 3년 전, 부산에서 시인을 좌장으로 모시고 최영철 시인과 함께 신춘문예 심사를 했다.
심사를 마치고 생선회로 식사를 했다. 그땐 시인이 잘 드시지 못해 음식을 남겼다. 다 먹지 못하고 지상에 남겼던 우거짓국과 생선회. 쓸쓸한 식욕 같은, 때론 그런 것이 인연을 만드는가 보다. 한 마리 사슴 같았던 시인의 명복을 빈다.
정일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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