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원심과 같이 항소심에서도 잘못된 법 적용을 고수하는 바람에 금품을 대신 전달했다고 진술까지 한 사람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결국 뇌물을 받은 사람만 처벌받게 됐고, '직접' 뇌물을 준 사람은 기소조차 되지 않아 검찰의 자의적 공소권 행사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김창석)는 코스닥 상장업체 M사가 정부사업의 주관업체로 선정되도록 힘써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은 정부 산하 연구소 직원 김모씨에게 원심보다 1년6월 감형된 징역 1년에 추징금 6,000만원을 선고했다고 22일 밝혔다. 그러나 M사 소유주 이모씨의 부탁으로 김씨에게 돈을 전달한 혐의(제3자뇌물취득)로 기소된 지방대 교수 유모씨에게는 원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1심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 받았던 공소장을 항소심에서도 그대로 유지한 결과다.
김씨가 받은 금품은 총 6,000만원이다. 이 중 4,000만원은 2006년 4월 유씨의 주선으로 이뤄진 식사자리에서 이씨가 직접 봉투에 넣어 전달했다. 기소되지 않은 이씨가 증인으로 출석해 4,000만원을 전달했다고 밝혀 이 부분에 대한 혐의 입증은 쉬웠다. 문제는 나머지 2,000만원이었다.
이씨는 "내가 유씨에게 돈을 줬고, 유씨가 그 돈을 김씨에게 전달했다"고 말한 반면, 유씨는 "이씨에게 돌려줘야 할 돈을 보관 중에 있다가 김씨에게 전달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돈이 김씨에게 전달된 점은 같지만, 출처가 다른 것이다. 이에 1심은 유씨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공소장 변경 필요성을 두 차례나 시사했다. 돈 출처가 불분명한 이상 제3자뇌물취득죄가 아닌 뇌물공여죄로 공소장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이 거절하자, 재판부는 이 사실을 법정조서에 기재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에서도 검찰은 공소장을 변경하지 않았지만, 다소 태도를 바꿔 "유씨가 보관 중이던 돈을 이씨의 부탁을 받고 전달했더라도 제3자뇌물취득죄는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직권으로 공소사실과 다른 범죄사실을 인정하기 위해선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위여야 하는데 이 사건은 교부의 시기, 방법 등이 전혀 다르다"며 공소장에 대한 지적부터 했다. 즉, '유씨가 이씨로부터 김씨에게 금품을 전달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돈을 교부 받았다'고 적시된 공소사실과 '유씨가 이씨에게 돌려줄 돈을 보관하고 있다가 이씨의 부탁으로 이를 김씨에 전달했다'는 내용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검찰이 상고를 하더라도 대법원은 공소장 변경을 할 수 없는 법률심이기 때문에 김씨에 대한 처벌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차별적 기소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판사는 "뇌물 사건에서 공여자가 기소되지 않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이 사건처럼 대신 전달한 사람까지 기소했으면서 직접 건넨 사람을 기소하지 않은 것은 공소권의 자의적 행사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앞서 "김씨는 이미 다른 죄로 오랜 기간 수감 중이라 기소하지 않은 것 같다"고 석연찮은 해명을 한 바 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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