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대구 달성군 논공읍 금포리 금포초등학교. 1층 한쪽 끝에 마련된 학습도움실에 들어서자 상쾌한 향이 물씬 풍긴다. 향기는 교실 한 켠에 마련된 8㎡ 면적의 작은 탕과 1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오크통처럼 생긴 욕조에서 나오는 듯 했다. 한 1학년 어린이가 지긋이 눈을 감은 채 탕 속에 목까지 몸을 담그고 있고 욕실 안 욕조 옆에는 또 다른 어린이가 차례를 기다리는 듯 책을 읽고 있었다. 뜨끈뜨끈한 물에 가만히 있기가 답답했는지 탕 속에 있던 어린이가 물장난을 치려 하자, 욕실 밖에서 지켜보던 지도교사가 "그러면 효과가 없다"며 부드럽게 제지했다.
대구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이 학교의 아토피 목욕요법실 풍경이다. 목욕실의 독특한 냄새는 바로 아토피에 좋다는 편백나무에서 나오는 향이다. 여기에 아토피 증상완화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한의사의 권유에 따라 봉삼(鳳蔘)으로 불리는 백선(白蘚)을 끓인 액도 목욕물에 첨가했다.
욕실과 욕조뿐 아니라 물도 특별하다. 태양열로 데운 온수다. 햇빛을 따라 이동하는 직경 4m의 추적식 태양열 집열판을 사용하고 있다. 햇살이 좋으면 75도까지 올라간다. 이렇게 덥힌 물은 2톤 용량의 온수탱크에 저장된다. 맑은 날이 계속되면 목욕실뿐 아니라 모든 교실에서도 35∼40도의 따뜻한 물을 쓸 수 있다.
전교생이 9학급 165명에 불과한 이 학교가 편백나무 아토피 목욕실 설치에 나선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환경오염이 심화하면서 많은 학생들이 아토피로 수업과 일상생활에 지장 받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던 조희태(60) 교장이 편백나무가 증상완화에 좋다는 것을 알고 추진한 것이다. 편백나무는 충남 금산군이 조성한 '금산 건강 숲' 주종 수목일 정도로 아토피 등 알레르기성 질환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원산의 상록침엽교목으로 대중탕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히노끼탕이 이 나무로 만든 것이다.
아토피 목욕요법실을 만드는 일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우선 편백나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자재를 마련하자 주변에서 '학교에 무슨 목욕탕'이냐는 지적도 있었다. 더욱이 남, 여 교사가 교대로 목욕도우미를 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었지만 학생들을 위한 일이라 성사될 수 있었다.
지난 달 초 이 학교가 개학과 함께 아토피 목욕요법을 하기 시작하면서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전교생의 10%가 넘는 19명이 아토피로 고생했지만 아이들의 증상이 개선되는 게 눈에 띄게 보이는 것이다. 특히 2명은 피딱지가 앉았을 정도로 증세가 심했지만 지금은 겨우 흔적만 남았다. 김민경(11·4년)양은 "처음에는 수건과 갈아입을 속옷을 가져오라고 해 부끄러웠는데 요즘은 가려움이 없어져 공부도 잘 되는 것 같다"고 재잘거렸다. 김 양은 목과 무릎이 가려워 피나 날 정도로 긁어대는 게 일상이었을 만큼 심한 아토피증후군에 시달렸던 지라 목욕요법실의 단골손님이다.
편백나무 목욕은 주당 2, 3차례. 점심시간이나 방과후에 주로 한다. 시간은 보통 20분 정도다. 3월 잦은 비로 일조시간이 부족해 매일 하기에는 온수가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아기 때부터 아토피가 심해 좋다는 것은 다 해 보았지만 그때뿐이었다"는 학부모 김모(35)씨는 "편백나무가 아토피에 좋다는 말은 들었지만 학교에서 해 주니 고맙기만 하다"고 말했다. 교사 곽이섭(45)씨는 "교사 입장에서 새로운 '잡무'가 생긴 셈이지만 아이들의 증상이 개선되고 자연스럽게 수업분위기도 좋아지니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학교측은 향후 욕실 내에 족욕시설을 추가하고, 도서실 책장도 편백나무로 바꿀 계획이다. 편백나무 향이 집중력을 높여주는 효과도 있어 일반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조 교장은 "아토피 증상이 심한 아이들은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고통을 받는데 목욕탕 하나로 모든 아이들을 완치시키긴 어렵겠지만 기대 이상의 효과를 보이고 있다"며 "최고의 친환경적 교육여건을 만드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대구=김강석 기자 kimksu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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