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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빚 안전한가/ <상> 국가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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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빚 안전한가/ <상> 국가부채

입력
2010.04.2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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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쓸 곳 많고… 위기충격 크고… 기댈 곳 없고…' 3難 주의보'

"밖에서는 다 좋다고 하는데, 안에서는 왜 이렇게 난리들인지 모르겠습니다."

기획재정부 한 고위 인사의 하소연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재정 건전성에 대한 대외적 평가는 꽤 후한 편. 국제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최근 우리나라 국가 신용등급을 환란 전으로 되돌려 놓으면서, "세계 경제 위기에도 정부 국채가 크게 늘지 않고 적정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지난해 재정적자 규모도 상대적으로 적다"고 평했다. 메릴린치,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해외 투자은행들도 우리 정부보다도 더 낙관적인 재정수지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일각에서 이유 없는 트집을 잡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정부나 외부에서 들이대는 잣대가 너무 안이한 것 일까. 우리나라 국가채무를 바라보는 정 반대의 시선을 쟁점 별로 짚어본다.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인가

국가든 기업이든 가계든, 적정한 빚은 활력소다. 빚을 내서 투자를 하고, 이자보다 더 많은 수익(효과)을 낼 수 있으면 된다. 그래서, 빚의 절대규모를 두고 '많다, 적다'를 따지는 건 부질없다.

중요한 건 빚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다. 작년 국가채무(359조6,000억원) 중 중앙정부 채무(346조1,000억원)에 대한 이자부담은 연간 14조4,000억원. 올해는 2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절대적으로 큰 금액이긴 하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데 이견은 많지 않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 교수는 "지금은 수입과 지출이 비교적 안정돼 있기 때문에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봐야 된다"고 했고, 박형수 조세연구원 재정분석센터장도 "국내총생산(GDP)의 30% 중반대에서 관리가 이뤄진다면 우리 경제규모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이 아닌, 중장기적인 빚 감당 능력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저출산ㆍ고령화와 성장 잠재력 둔화, 그리고 통일비용까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감안한다면 점진적 재정 악화는 불가피하다는 것. 삼성경제연구소는 2040년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90%를 넘어서면서 재정위기가 발생할 위험에 직면할 거라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전주성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에 정부 예산에서 수익성 높은 경제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지만 이제는 수익성이 낮은 복지 예산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기업이나 국가나 성숙기에 접어들면 빚을 갚을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걸 감안해야 된다"고 말했다.

증가속도는 괜찮나

또 하나 눈 여겨 봐야 할 것이 국가채무 증가 속도다. 외환위기 전인 1997년 GDP의 12.3%에 불과하던 국가채무는 작년 33.8%까지 치솟았다. 누가 봐도, 가파른 기울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작년 재정수지 적자 역시 예상보다 줄긴 했어도, 43조2,000억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에 달했다.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으면 추세적인 상승을 억제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지적에 동의하면서도 지난 10여년간 두 차례의 위기라는 특수요인 탓에 빚이 늘어났다는 점을 강조한다. 박기백 교수는 "환란 극복 과정에서 투입한 공적자금에 대해 정부가 보증을 선 것이 2003년 이후 일부(49조원) 국채로 전환되면서 빚 증가 속도가 가팔라졌다"며 "증가 속도가 주춤해질 무렵 다시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또 다른 위기로 재정 지출을 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라는 예외적인 요인을 배제하고 나면,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완만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기까지도 통제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박종규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장은"환란 때문이니 글로벌 금융위기 탓이니 하는 변명이 많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앞으로도 그런 위기는 되풀이 될 것"이라며 "평상 시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해야 되는 이유도 주기적으로 닥치는 위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젠 채무 증가가 추세로 자리잡았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비교는 타당한가

국가채무 얘기가 나오면 정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드는 게 국제 비교다. 작년 기준으로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33.8%)이 일본(218.6%)을 비롯해서 미국(84.8%) 프랑스(78.0%) 독일(78.7%) 영국(68.7%)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것이다.

문제는 국가마다 사정이 다 다른데 단순히 수치만을 놓고 비교하는 것이 타당하느냐는 점이다. 기축통화(달러) 보유국인 미국이야 말할 것도 없고, 최근 그리스 재정위기사태에서 확인된 것처럼 유럽국가들은 유럽연합(EU)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국가채무 비율이 가장 높다는 일본도 대외채무는 별로 없어서 국가부도위험은 그리 크지 않다.

이 뿐이 아니다. 전주성 교수는 "각국 재정적자의 성격이 어떤지, 앞으로 복지예산 수요가 어느 정도 되는지, 빚을 끌어다가 어디에 쓰는지 등등 나라마다 사정이 제각각"이라며 "이런 요인을 모두 배제한 채 단순 비교로 우리나라는 괜찮다고 단언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한다. 즉 ▦기댈 곳도 없고 ▦위기 충격이 심하고 ▦앞으로 돈 쓸 곳도 많은 우리나라 내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 '빛 좋은 성장전망'으로 적자 확대 악순환

국가채무의 관리책임은 정부의 몫이다. 정부의 의지와 관리능력에 따라 국가채무는 위험해질 수도, 안전해질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건전재정으로 가기 위해선, 무엇보다 정부 스스로 주먹구구식, 근시안적 재정운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정부는 재정건전성 제고를 위해 2004년부터 매년 향후 5년치의 재정운용계획을 수립, 국회에 제출하고 있다. 5년간의 계획을 미리 세움으로써, 재정운용을 건실하게 꾸려가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실상 재정운용계획은 '수립'만 될 뿐 '운용'은 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국회예산처가 지난해 말 작성한 '국가재정운용계획 평가 및 과제'에 따르면 계 48개 세부항목 가운데 43개가 목표에 미치지 못했다. 점수(목표달성률)로 환산하면 100점 만점에 10점인 셈. 특히 재정수지의 경우 단 한번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재정준칙 도입에 대한 목소리가 탄력을 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영선 KDI 재정사회정책 선임연구원은 "우리나라도 경제위기와 인구고령화로 재정이 급격히 악화하고 있는 만큼 재정준칙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재정준칙이란 재정수지, 국가채무, 총지출 등의 재정지표에 대해 구체적인 목표 수치를 밝히고 이를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명시하는 것. 막연히 '세입 내 세출'같은 원칙으론 재정건전화를 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요국 중에선 90년대 재정 악화로 고민하던 미국 클린턴 정부가 총지출 한도를 명시한 재정준칙을 통해 재정을 크게 개선시킨 적이 있다.

불필요한 지출을 최소화하는 것만큼 재정에 이로운 것도 없다. 강성권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재정운용계획에서 예산지출 총액에 대한 전망을 하고는 있지만 예상편성시 과거의 전망치를 준수할 의무는 없는 상황"이라며 "대규모 지출이 수반되는 사업의 경우 관계법 법안 제안 시 지출소요를 충당할 수 있는 재원을 포함하도록 의무화해 재정위기 발생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지출에 대한 구속력을 강화하면 불필요한 지출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 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재정건전성을 위해 정부의 감세기조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현정부 초기 경제 활성화 목적으로 감세로 방향을 잡았지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재정건전성 문제가 더 시급해진 만큼 정부의 감세 기조는 재고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국가가 발전 할수록 교육 복지 치안 등 정부의 역할이 커지게 되고 이에 따라 정부의 사이즈가 커지면 조세부담률을 올려야 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세수 확대에도 여지가 있는 상태에서 국채 등을 발행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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