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금융감독기관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19개 대형 금융회사들의 분식회계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지난주 골드만삭스를 고객 사기혐의로 기소하면서 시작된 미국 정부의 월스트리트 공격이 확산되면서 올해 금융규제 강화가 미 중간선거의 주요 승부처로 부각되고 있다.
메리 샤피로 SEC 위원장은 20일 리먼브라더스 파산을 조사하는 하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과도한 부채를 감추는 회계분식이 리먼브라더스뿐 아니라 다른 대형 금융회사들에서도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19개 대형 금융회사의 관련 정보를 수집 중이라고 밝혔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1일 보도했다.
SEC의 조사는 ‘Repo 105’라고 알려진 분식회계 기법에 집중되는데 이는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할 당시 500억달러의 부채를 은폐하는데 사용됐다. 액면가 105달러짜리 채권을 담보로 100달러의 돈을 빌릴 경우 회계장부에는 부채로 계상해야 하지만, 리먼브라더스는 이를 자산매각으로 처리해 부채를 숨기고 100달러의 현금만을 계상하는 식으로 회계장부를 조작했다. WSJ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5분기 동안 18개 대형 금융회사의 부채가 결산을 앞둔 회기 말에 갑자기 회기 중 부채 최대규모에 비해 평균 42%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이 같은 분식이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청문회에서 정부와 민주당 의원들은 대형 금융사들의 탈법과 부도덕에 대한 감독당국의 권한을 확대하는 금융규제감독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화당 측은 당국의 권한 강화는 시장을 위축시킬 뿐 실제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고 맞섰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대형 금융회사를 작은 회사들로 분리ㆍ해체할 수 있는 권한을 금융감독당국에 부여하는 것은 건설적"이라며 정부측을 지원했다.
반면 공화당 스콧 가렛(뉴저지) 하원의원은 “리먼의 파산 자체가 민주당의 금융규제감독법안이 쓸모 없을 것이라는 증거”라며 “당국 권한강화는 시장을 위축시킬 뿐 금융안정을 지킬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는 SEC의 골드만삭스 기소를 계기로 월스트리트에 대한 분노 여론이 커지면서 공화당의 금융규제감독법안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약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치 매코넬 공화당 상원원내대표는 “민주당 법안은 여전히 문제점이 많지만, 공화당의 입장과 접점을 찾을 수 있는 새로운 내용이 추가될 것”이라며 “양당 합의 통과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한편 사기혐의로 기소당한 골드만삭스는 1월까지 버락 오바마대통령의 수석 법률고문으로 일했던 거물 변호사 그렉 크레이그를 계속 고용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SEC와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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