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가 없는 기술 개발은 의미가 없다. 이제까진‘빠른 추격자’(패스트 팔로우어ㆍFast Follower)로 한국 이미지를 높였지만, 앞으로는 산업 흐름을 주도하는‘선구자’(퍼스트 무버ㆍFirst Mover)가 돼야 한다.”
21일 지식경제부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황창규 지식경제 연구개발(R&D) 전략기획단장은 “2020년까지 세계 5대 기술강국 도약을 목표로 국가 R&D를 추진하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전세계는 지금 경제 전쟁중이며, 결국 기술을 갖고 있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며 “이제까지 해오던 선진국 추격형 R&D를 이제는 산업 선도형 ‘연구ㆍ사업개발’(Research&Business Development)로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단장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면서 정보기술(IT)을 비롯해 자동차, 선박, 원자력 등 우리가 1등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이 기술들이 세계 경제를 이끌고 있다”며 “그러나 이 기술들은 10년 후에도 세계를 쥐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창조적 기술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대두한 IT 위기론과 관련, “2005년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를 만났을 때 이미 아이폰의 미래를 설명하는 얘길 듣고 아주 아연실색했다”는 일화를 소개한 뒤 “우리가 늦게 시작한 것은 인정해야 하지만, 우리의 강점인 하드웨어를 살리면서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개발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R&D 전략으로는 산업을 넘나들 뿐 아니라 국가 단위 기술 개발을 넘나드는 ‘오픈 이노베이션’과 통섭형 R&D를 제시했다. 그는 “연구원들이 마음놓고 위험을 부담(리스크 테이킹)할 수 있는 연구환경을 조성, 생산적 실패를 용인하고 장려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동시에 철저한 경쟁 논리를 도입해 투자수익률(ROI) 개념의 평가 기준을 마련하고 질적 평가도 병행하겠다”고 말했다.
황 단장은 그 동안의 정부 R&D에 대해선 “민간이 할 수 없는 부분에서 위험을 담당했지만, 사업화에는 취약했다”며 “단기 성과가 용이한 쪽에 프로젝트를 하다보니 경쟁 논리가 없어졌다”고 꼬집었다.
그는 한편 삼성의 R&D는 어떻게 진행되느냐고 묻자 “평가를 사업부에서도 하고 본부에서도 한다”며 “사업부는 보통 3년, 종합기술원은 5~10년을 내다 보고 진행한다”고 공개했다.
서울대를 나와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에서 전기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황 단장은 1992년 삼성에 합류한 뒤 2001~2009년 삼성전자 사장을 지내며, 메모리 반도체 부문을 세계 1위로 올려 놓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이에 앞서 지식경제부는 지난달 연간 4조원이 넘는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의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을 민간으로 대폭 이양키로 하고, 이를 R&D 전략기획단에서 총괄토록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