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말리 극단은 무대를 삶의 축도로 만든다. 2001년의 '가우데아무스', 2006년의 '형제 자매들' 등 두 차례 내한 공연에서 그들은 무대가 곧 삶의 현장을 그대로 모사한 것일 수도 있음을 실증했다. 객석에게는 무대와 현실이 구분되지 않았다. 그들의 무대는 뚜렷한 방향을 갖고 생생한 삶을 그렸다. '대하(大河)'라는 말이 연극 무대에서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웅변했다.
그들이 다시 온다. 이번에는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다. 작은 실험극단으로 출발했던 이 극단을 23년의 세월과 함께 세계적 극단으로 키워낸 연출가 레프 도진(66)의 이번 무대도 상연 시간이 3시간여다. '전원 생활의 정경'이란 원래 희곡의 부제대로 시골을 배경으로 19세기 말 러시아의 세태를 보여준다. 그러나 대하가 흐르듯 유장하게 진행되는 도진의 무대는 연극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사실적 수법에 의지해 최대한으로 확장시킬 수 있음을 증명한다.
도진은 이 무대를 "체호프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정수"로 꼽는다. 20여년 간 무대 구상만 하다 2003년에야 첫 상연한 데에는 그 같은 경외심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 무대는 또 연극을 유흥이 아니라 계몽과 학습의 장으로 여기는 러시아 특유의 연극관이 빚어낸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도진의 배우들은 테크닉을 넘어서, 등장인물의 심성과 감각에 자신을 동화시키는 훈련을 거친다. 대연출가 피터 브룩이 "말리 극장은 세계 최고의 앙상블"이라 감탄했던 그 진면목을 확인할 기회다. 5월 5~8일, LG아트센터. (02)2005-0114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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