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법재판소(ICJ)가 처음 심리한 국제분쟁은 코르푸(Corfu) 해협사건이다. 1946년 10월 그리스와 알바니아의 경계 수역인 코르푸 해협에 진입한 영국해군 구축함 2척이 기뢰에 부딪혀 승조원 44명이 죽고 42명이 부상한 사건과 관련한 분쟁이다. 영국 해군은 알바니아군의 포격 경고를 무릅쓰고 소해작전을 펴 독일제 계류 기뢰 22기를 제거했다. 이 기뢰들이 최근에 부설됐고 피해 군함에서 발견된 기뢰 파편과 재질이 같다는 점을 입증해 알바니아에 배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알바니아가 자국과 영국의 관계 정상화를 원치 않는 세력의 소행이라며 부인하자 ICJ에 제소했던 것이다.
■ ICJ는 2년 여의 심리 끝에 알바니아에 대해 200만9,437달러를 영국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자국 영해의 안전 관리에 대한 책임을 물었을 뿐, 기뢰 부설 주체에 대한 판단은 배제했다. 문제의 기뢰를 어떤 세력이 부설했는지가 영구미제로 남게 된 것이다. 유고를 의심하는 측이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진실은 베일 속이다. 영국 군함에 포 사격까지 했던 알바니아였던 만큼 영국의 심증은 강했으나 확보된 물증만으로는 알바니아의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던 것이다.
■ 김태영 국방장관이 천안함 침몰 원인 규명과 관련해 영구미제 가능성을 거론했다. 기뢰 또는 어뢰로 추정할 수 있지만 물증이 제한돼 있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북한의 소행을 기정사실화해 가는 흐름과는 배치되는 언급이라 파장이 일 법도 하다. 그러나 기뢰 파편을 피해 함정 내부에서 찾아냈던 코르푸 해협 사건과는 또 달리 바닷속 뻘밭에서 물증을 건져내야 하는 천안함의 경우는 한층 더 불리하다. 김 장관의 영구미제 언급이 터무니없지만은 않게 여겨지는 이유다.
■ 정치적 이유에서 영구미제 가능성을 거론하는 측도 있다. 북한의 소행이 분명하게 드러나면 이명박 정부 임기 내 남북정상회담이 물 건너가고, 서울 G20 정상회의에도 불안을 드리울 게 뻔하다. 또 경제에 미칠 악영향 때문에 무력 보복도 어려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불가피한 만큼 영구미제가 정치적 해답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영구미제로 넘긴다 해도 국민 다수의 심증이 굳어진다면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어떤 시도도 불가능하다. 남북관계에 골병이 드는 것이다. 대명천지에 인위적으로 영구미제로 몰아가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겠지만 그래 봐야 득 될 게 없다. 오직 진실만이 정답이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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