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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그대 아직 젊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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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그대 아직 젊기 때문에

입력
2010.04.20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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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이여. 젊은 벗이여. 바다로 가자. 바다로 가서 고래를 만나자. 박물관의 박제가 된 고래가 아닌, 살아서 수평선 위로 튀어 오르는 거대한 고래를 만나보자. 청년실업이란 벽 앞에 웅크려있지 말고, 우울한 시대에 좌절하지 말고 고래를 만나 목청 터지도록 환호하자.

이 나라 동쪽 한 끝, 울산 장생포항에서 고래를 만나러 가는 배가 출항한다. 그 배가 항해하는 곳이 '고래바다'다. 행여 바다를 호수라고 착각하지 마라. 바다는 그 자체가 살아있는 동물이다. 바다는 언제 거친 파도를 일으켜 배를 심하게 흔들고 그대를 곤두박질치게 할지 모른다.

뱃멀미로 어지럽고 육신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렇다고 배를 타기 전에 멀미약을 먹는다면 그대는 실패자다. 몸 속 겨자씨 같은 멀미 하나 이기지 못하고 어떻게 태산 같은 고래를 만나겠는가. 내가 나와 싸워 이기지 못하고 어떻게 더 먼 바다의 꿈을 꾸겠는가. 바다는 솜사탕 들고 찾아가는 놀이공원이 아니다. 고래를 만나러 가는 배는 놀이기구가 아니다. 그곳은 그대가 헤쳐 나갈 현실에 다름 아니다.

쓰러져 뱃전에 드러눕지 않고 파도치는 난간 잡고서 기다린 사람에게 바다는 반드시 고래를 선물한다. 그게 얼마나 큰 축복의 세례인지 고래를 만나본 사람은 안다. 바다로 가자. 좋은 날 말고 험한 날을 골라 고래 만나러 가자. 벗이여. 그대 아직 젊지 않은가.

정일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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