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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럭비 선수권대회 '격전의 코트'/ "장애는 쾅 부딪치며 이겨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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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럭비 선수권대회 '격전의 코트'/ "장애는 쾅 부딪치며 이겨내는 거야"

입력
2010.04.18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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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비는 몸싸움이 가장 치열한 스포츠다. 마치 육탄전을 벌이듯 밀치고 당기는 선수들의 몸짓은 보는 사람마저 전율에 휩싸이게 한다. 그런데 팔다리를 쓸 수 없는 장애인들이 럭비에 푹 빠졌다니 어리둥절했다. 그것도 휠체어를 타고 거친 경기를 소화해 낸다니 가능할까 싶었다.

마침 17, 18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체육관에서 '제2회 휠체어럭비선수권대회'가 열렸다. 국내 11개 휠체어럭비클럽 팀 중 6곳이 참가하는 전국 규모의 대회였다. 내년 국가대표 선발을 위한 기술자문위원들의 평가도 이뤄지는 바람에 선수들의 열기는 대단했다. 알고 보니 공을 품에 안고 골 라인을 통과하면 점수를 얻는 럭비는 척수 손상으로 신경이 망가져 팔 근육이 약해진 척수장애인이 유일하게 즐길 수 있는 구기 종목이었다.

부딪혀야 삶을 느낀다

17일 오후엔 서울과 경기 팀의 시합이 한창이었다. 각 팀 4명, 모두 8명의 선수들이 휠체어를 타고 가로 15m, 세로 28m의 코트 안을 활주했다. 선수가 공을 안고 골 라인으로 진입하면 1점. 주어진 공격시간 40초다. 약한 팔 근육 때문에 손등으로 바퀴를 쓸듯 밀어 힘겹게 전진했지만 근성만은 뒤지지 않았다.

선수들은 발 앞쪽으로 20㎝ 정도 도드라진 범퍼로 상대의 휠체어를 몰아붙였다. 가속도가 붙은 휠체어끼리 맞부딪히면 체육관은 "쾅" 하고 울렸고, 휠체어는 범퍼부터 공중으로 들어올려졌다. 선수들의 가쁜 맥박이 럭비의 거친 야성을 한껏 드러냈다. 선수들은 한결같이 "상대 선수와 몸을 부대끼며 경기를 하는 그 순간 '나 아직 죽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저마다 좌절을 겪었기에 코트 안에서 토해내는 숨결과 땀방울이 더욱 소중하다고 했다. 이명호(30ㆍ경기 고양시 소속)씨는 회사원으로 일하던 2007년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다리를 쓰지 못한다. 2008년 재활치료 중에 같은 병실에 있던 환자의 추천으로 연을 맺는 럭비는 그에게 새로운 인생을 안겼다. "늘 무기력했는데 럭비의 스피드와 스릴에 흠뻑 빠져들면 살아있다는 흥분을 감출 수 없어요." 2009년 그는 휠체어럭비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정종대(25ㆍ서울 헌터스 소속)씨는 2000년 자동차 전복사고로 팔다리의 신경을 잃었다. 당시 17세였던 그는 몰래 부모님 차를 끌고 거리로 나온 친구들과 동승했다 화를 당했다. 살고 싶은 의지마저 사라져 은둔하던 그는 눈물로 밤을 지새는 어머니에게 죄스러워 휠체어농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팔 근육이 약해 슛을 하면 골대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다른 좌절이었다. 그는 "우연히 2004년 휠체어럭비로 종목을 바꿨는데 다행히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국내 휠체어럭비 선수 가운데 최초로 다음달 일본(니가타현 불독 팀)에 진출, 일본 선수권대회에도 참가한다.

코트 안에선 승자

이날 막간을 이용해 이색적인 시범경기도 열렸다. 장애인과의 벽을 허무는 계기가 되길 희망하며 비장애인과 장애 정도가 덜한 장애인 선수들이 휠체어럭비 경기를 벌인 것이다. 비장애인 팀은 각각 건국대 중앙대 동서대 체육교육과 학생으로 구성된 세 팀이었다. 이들은 휠체어럭비를 위해 한 달간 훈련을 했다.

"그럼, 당연히 비장애인 팀이 이기잖아요." 건국대(비장애인)와 부산(장애인) 팀의 경기를 앞두고 기자가 묻자, 대답 대신 부산 팀의 박찬수(40) 감독은 선수들에게 "난중에(나중에) 살살하더라도 처음엔 기 쫌(조금) 쥑이자(죽이자)"고 외쳤다.

장애인으로 구성된 부산은 경기 9분만에 12골을 몰아넣었다. 건국대 팀의 득점은 0점. 운동깨나 했다는 건장한 체육교육과 학생들로만 구성됐지만, 짧게는 5년 길게는 수십 년을 휠체어를 다리로 여기고 움직여온 장애인 선수들을 따라잡지 못했다. 결과는 37:6, 부산 팀의 승리.

건국대 팀의 감독을 맡은 김석진씨는 "장애인 팀의 승부욕을 자극하고 경기력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 이런 경기를 편성했는데, 한 달의 연습기간이 너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멋쩍게 웃었다. 건국대 선수로 뛴 홍가희씨는 "휠체어를 구할 수 없어 나름대로는 의자에 앉거나 쭈그리고 체육관 바닥에 앉아서 배구공으로 연습을 해왔는데 휠체어 방향전환이 쉽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아쉬워했고, 이우완씨는 "정말 이 분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뭔가를 정말 이겨냈구나 하는 마음에 뭉클했다"고 존경을 표했다.

휠체어럭비 선수들의 이번 대회 활약상은 내년에 꾸려지는 2011년 국가대표팀 선발의 기초자료가 된다. 국가대표팀의 첫 목표는 2011년 11월 열리는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예선에서 3위를 거머쥐는 것이다. 그래야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참가자격을 확보할 수 있다. 2009년 한국팀은 5개 국가 중 4위에 머물렀다.

넘어야 할 산도 많다. 하루 2만~2만5,000원하는 훈련비 탓에 연습 대신 밥벌이를 걱정해야 하는 선수가 적지 않다. 휠체어 바퀴 자국이 나는 걸 싫어하는 체육관이 많아 연습장소 구하기도 쉽지 않다. 국가대표 훈련 일정은 예산 부족으로 50일에서 30일로 축소됐다.

그래도 선수들은 단단히 벼르고 있다. "외국 선수들이 '쟤네, 예전에 약체였던 한국팀 맞아'라고 할 정도로 휠체어를 몰아붙일 겁니다."

김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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