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벤 버냉키 미 FRB 의장은 TV 인터뷰에서 미국경제 상황을 '새싹(Green shoot)'에 비유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을 뚫고 새싹이 돋아나는 것처럼, 대규모 경기 부양책에 힘입어 희망의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 같은 판단과 자신감은 한달 후 통화정책회의 성명에 반영됐다. 월가는 즉각 GDP 내용을 뜯어보며 새싹의 징후를 찾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반면 "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하다가 금융위기를 자초한 장본인이 또다시 사태를 오판하고 있다"는 비아냥도 적지 않았다.
■ 그 선두에는 비관론자의 대표인 뉴욕대 누리엘 루비니 교수가 섰다. 그는 "위기의 본질은 유동성이 아니라 지불 능력"이라며 고통스런 버블 청산과정에서 세계 경제의 축소 균형이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고 꼬집었다. 따라서 경기가 하강을 멈추고 완만하게 회복되는 듯해도, 그것은 '싹수가 노란 잡초(Yellow weed)'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새싹론과 잡초론의 승자는 가리기 어렵다. 이후 미국과 세계 경제가 동구권 금융위기, 두바이 모라토리움, 남유럽권 재정위기, 미국과 중국의 G2 대립 등으로 끊임없이 요동치면서도 궤도를 이탈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 1년이 지난 요즘 미국 언론에서 새싹론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1분기 소비지출 증가와 기업실적 호전에 힘입어 다우존스 지수가 금융위기 직전 수준인 1만1,000선을 회복한데다, FRB도 경기회복세 확산을 경기보고서에 명시한 까닭이다. 때마침 중국의 1분기 성장률이 11.9%를 기록하고 일본에선 디플레 탈출 기대가 커지고 있다. 다른 아시아권의 성장도 놀랍다. 물론 루비니 교수는 "더블딥 가능성이 크게 줄었다"는 버냉키 의장의 평가에 반대하며 여전히 U자형 회복 전망을 고수하고 있다.
■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주말, 시중은행장들과의 금융협의회에서 "OECD 대사 시절부터 'Green shoot'이 어디서 나올지 관심이 많았는데 미국의 은행과 대기업 실적을 놓고 그런 의견이 나오더라"고 소개했다. "봄은 왔지만(성장률 전망은 좋아졌지만), 아직 봄이 아니다(민간 자생력 회복 부진)"며'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애창시처럼 읊던 김 총재가 돌연 새싹론을 거론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그의 언급을 귀담아 듣는 기색이 없다. 중앙은행 총재의 말에 진지한 고민의 흔적이 없으니 위엄이 설 수 없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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