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슬슬 밭 갈러 나가봐야죠. 올해는 책을 내느라 좀 늦어졌네요."
경기 파주 교하신도시에 사는 유다경씨의 아파트 거실이며 베란다는 온통 모종 밭이다. "저건 바질이고, 저건 로켓이라는 거예요. 다 허브죠. 이것도 하이브라는 허브고, 이건 조선오이…."종류만도 어지간한 종묘상 저리 가라 할 정도. 경력 8년차 베테랑 '텃밭지기'의 모종 자랑이 자식자랑 못잖다.
"엄밀히 말하면 텃밭지기가 된 건 2008년부터예요. 그 전엔 주말농장을 했던 거고요. 주말농장은 말 그대로 주말에 잠깐씩 나가는 거고, 텃밭지기는 수시로 가꾸는 겁니다."지난 해 그가 일군 텃밭은 무려 100평이었다고 한다.
그 정도면 농사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는 "농사와 텃밭농사는 이랑 만들고 삽질하는 것 빼곤 다 다른, 전혀 다른 장르"라고 말했다. "우린 소량 다품종을 가꾸거든요. 그러자면 농사짓는 방법부터 달라져야 해요." 그는 우리 농업 기술이나 자재, 정보 등이 거의 전업농 중심으로 공급ㆍ유통되기 때문에 텃밭농사가 어떤 면에선 더 어렵다고도 했다. "비료를 좀 사려고 해도 20㎏단위로 팔아요. 텃밭 농사엔 1㎏만 있어도 몇 년 쓰죠. 약제도 최소 300평 단위로 나오고…. 농촌진흥청 영농교본을 참조하려고 해도 1,000평 당 약제 몇 ㎏식이거든요. 그걸 10평 단위로 환산하면 얘기가 안 되죠. 또 작물마다 비료나 농약 종류가 다 달라요. 우리처럼 종류별로 서너 포기씩 심으면서 그 놈들 구미를 다 맞춰줄 수는 없죠."
주말농장지기, 텃밭지기들의 그런 고충 탓에 그의 블로그 문턱이 달았던가 보다. 2004년부터 운영하기 시작한 그의 네이버 블로그 '올빼미화원'의 요즘 하루 방문객 수는 3,000명이 넘는데, 그들은 유씨를, 살짝 과장해서 신농(神農)씨쯤으로 받든다. "관심사가 비슷하잖아요. 그것들을 철 따라 올리니까 즐겨들 찾으세요. 제 햇병아리 시절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호미 한 번 제대로 쥐어본 적 없으면서 무턱대고 땅 10평 빌려서 시작했던 2003년. 그의 주말농장 작황은 가관(?)이었다고 한다. "김장배추라고 수확했더니 속이 헐렁헐렁… 요즘은 어디 가서 구경도 못할 희한한 배추가 나왔고, 무도 색깔만 다른 당근 꼴이었어요. 봄에 이랑 몇 골 만드느라 삽질 조금 했다고 걸어서 계단을 못 올라갔다면 말 다 했죠."
오기가 나서 겨우내 공부하며 정보를 모았고, 그것들을 스스로 갈무리하느라 시작한 게 블로그였다. "그 땐 농사보다 오히려 허브에 대한 글을 더 많이 올렸던 것 같아요. 마침 허브에 관심들이 많아지던 시기였죠. 한두 분씩 블로그에 오셔서 이것저것 물으시더니 아예 눌러앉아 사시는 분들도 차츰 생기데요."
그가 제공하는 텃밭 영농정보는 (농사에 대해) 경험도 기술도 배운 것도 없는, 어디 물어볼 데는 더더욱 없는 이들에게 천금 같은 가르침이다. 더욱이 그의 본업이 방송작가다. 글맛도 블로그의 '흥행'에 적잖이 기여했을 것이다.
"요즘은 자잘한 질문은 대답을 못해드려요. 대신 시기에 맞춰 뭘 해야 한다는 큰 흐름을 짚어나가죠."그 세세한 정보들을 따로 모아 그가 최근 낸 책이 <도시농부 올빼미의 텃밭 가이드> (시골생활 발행)다. 도시농부>
그는 텃밭농사의 목적에서 수확의 기쁨은 10~20%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음이 달라지고 삶이 달라져요. 책에 적힌 대로 마인드컨트롤을 아무리 해도 안 되더니 저 채소들 앞에서는 되더군요."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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