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 지음/느린걸음 발행ㆍ128쪽ㆍ7,500원
지난 3월 10일 고려대 교정에 붙은 대자보 하나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찔렀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제목의,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씨의 선언이었다. 그는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되어버린 대학을 거부하고, '쓸모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탈주와 저항을 선언했다.
손바닥 만한 이 작은 책은 그의 행동이 결코 치기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오랜 고민과 단단한 성찰의 발로임을 보여준다. 대자보 전문에 이어 대학, 사회, 젊음, 공부, 이상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펼치고 있다.
그는 '인간을 잡아먹는 시장', '자격증 장사 브로커 대학', '배움을 독점한 국가'를 적이라고 규정한다. 시장, 대학, 국가라는 '억압의 삼각동맹'이 삶의 자율성을 뺏아간다는 판단 아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스스로 묻고 다짐하고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을 격려한다.
그는 '교육인적자원부'라는 정부 부처의 명칭에서 말의 타락을 본다. "교육이 인적 자원을 만들어내는 것인가. 인간은 자원이 아니다! 나는 자원이 아니다!"라고 외친다. 자신의 행동이 반시장, 반기업 정서에 물든 것이라고 비판하는 이들에게 그는 그런 당신들은 반인간, 반사회 정서에 너무 심하게 물든 게 아니냐며 인간성이 무너지는 곳에 기업인들 살아남을 수 있겠냐고 반문한다.
그는 "억압받지 않으면 진리가 아니다. 상처받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저항하지 않으면 젊음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 책은 이미 있는 것들, 당연하게 여겨져온 것들에 이의를 제기하는 질문들로 가득차 있다. 창의적 인재를 원한다는 대기업들의 요구는 대형 수족관 속에 재주 많은 돌고래를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왜 의무교육의 이름으로 12년 동안 교실에 갇혀 있어야 하는가, 하나뿐인 트랙이 아니라 야생의 초원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며 스스로 배워가는 것이 왜 꿈일 뿐이어야 하는가, 고르게 부자인 삶의 꿈이 진정한 진보일까, 젊은이의 진취성과 도전정신을 강조하는 것은 경쟁에서 앞서가라며 탐욕의 열정을 부추기는 말은 아닐까.
부모님들에게 사랑의 이름으로 아이를 길들이며 자율성의 날개를 꺾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고, 각자 살아남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부모 세대의 고통을 이해하면서도 '부모산성' 뛰어넘기가 가장 어렵다는 친구들의 말을 전하는 대목에 읽을 때는 가슴이 아프다.
그는 무르익은 사상가가 아니다. 논리의 비약이 심하다 싶은 데도 있고, 더러 지나치다 싶은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그런 허점보다는 자기 생각을 이렇게 진지하게, 겸손하면서도 당당하고 뜨겁게 피력하는 젊은이가 있다는 것이 반갑다.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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