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은행 금고에 지난해 말 노란색 딱지가 붙여졌다. 재산세 등 세금 5,100만원을 2년이 지나도록 내지 않고 있는 김모(45)씨의 대여금고에 대한 서울시의 압류통지서다. 김씨 본의 명의 재산은 거의 한 푼도 없는 명목상 알거지. 하지만 금고를 개봉해보니 압류에 나선 서울시 공무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금고에는 16돈짜리 금으로 된 골프공을 비롯해 진주 목걸이, 금팔찌, 달러지폐 등 모두 22점의 귀금속류가 들어있었다. 서울시는 김씨가 수 십억 원대에 달하는 부동산 등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지만 김씨는 재산을 다른 사람 명의로 해두는 교묘한 수법으로 그 동안 세금 징수를 피해 왔다.
서울시가 압류에 나선 또 다른 김모(74)씨. 2003년부터 지방세 2,100만원을 체납중인 김씨의 금고에서도 역시 금거북과 금열쇠, 금팔찌, 진주 목걸이 등 4점이 나왔다.
서울시가 악덕 체납자에 대한 대여금고 압류에 나선 것은 지난해 10월. 본인 명의 재산을 갖고 있지 않은 체납자들이 고액의 무기명채권과 귀금속 등의 재산을 은행 금고에 보관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서울시가 강제징수를 위해 지자체로는 처음으로 대여금고를 뒤지기 시작한 것이다. 대여금고는 금융기관이 고객에게 빌려주는 금고로 유가증권이나 귀금속, 중요서류 등이 주로 보관된다.
시는 우선 500만원 이상의 지방세 고액체납자 337명(체납액 464억원)을 타깃으로 삼아 은행에 이들의 대여금고 보유정보를 얻은 뒤 압류 전문공무원과 세무공무원이 이들의 대여금고 압류에 나섰다. 두 김씨를 포함한 22명은 압류통보를 받고 은행에 출석해 조사관의 입회 아래 자진해서 금고를 개봉했으며, 그 결과 각종 고가품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또 다른 24명은 시의 압류통보만으로도 6억3,700만원에 달하는 밀린 세금을 냈다. '금송아지'를 모셔뒀는지 금고 개봉을 꺼려 두 손을 들고 자진 납세한 것이다.
시는 금고 압류 통보에도 개봉을 거부하거나 연락이 닿지 않은 고액 체납자 240명의 금고는 강제로 개봉하기로 하고 지난달 29일부터 관련 절차에 들어갔다. 1차 대상자는 43개 지점에 금고를 보유한 체납자 51명이며, 체납액은 34억원에 달한다. 금고를 강제로 열어본 결과 전모씨에게서는 비상장법인의 주식이 나왔고, 김모씨는 고가의 장신구 14점을 보관하고 있었다.
시 관계자는 13일 "확보한 귀중품은 감정평가를 거쳐 공매해 체납액 청산에 사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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