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말 단독주택을 구입하면서 집값의 3분의 1을 대출로 충당했다. 월급으로는 원금을 갚아나갈 능력이 안됐기 때문에 거치기간을 늘려 잡았다. 당분간 이자만 부담하다가 집값이 오르면 원금까지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5% 안팎일 무렵이었으니, 1억원을 빌려도 연간 이자 부담은 500만원 수준이었다. 3~4년 뒤 집값이 1억원 정도 오른다면 이자를 제하고도 9,000만원 이상 남으리라는 계산을 했다.
'머니 게임' 권하는 사회
자기 돈 갖고 집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울 지역 근로자가 매달 84만원씩 저축해 109㎡(33평)형 아파트를 사려면 평균 56년6개월이 걸리는 현실이니, 너도나도 '머니 게임'에 매달리는 걸 나무랄 수도 없다. 집값이 꾸준히 올라준다면 아무런 문제도 안될 것이다. 그런데 주택경기가 얼어붙으면서 거래는 실종됐고, 부동산 버블 논쟁만 무성하니 고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은행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5.2%로 올려 잡는 등 경기회복세가 탄력을 받는다는데도 집값 하락세가 심상치 않으니 다들 똥끝이 탈 수밖에.
지금 부동산시장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의 부실과 미분양 주택 누적으로 빈사 상태다. 인구 및 주택 수요층의 감소로 장기 집값 전망도 좋지 않다. 더욱이 가계의 부채상환 능력은 사상 최악 수준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가계 빚은 전년 대비 6.6% 늘어난 734조원에 달했다. 2년 새 100조원이나 늘어난 것이다. 반면, 가계소득은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1.3% 감소했다.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150%를 넘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들의 가계부채가 줄어들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설상가상으로 부동산 버블 경계론이 잇따르고 있다. 산은 경제연구소가 '우리나라 집값은 미국과 일본의 버블 붕괴 직전과 유사한 수준'이라고 밝힌 데 이어, 대기업 계열인 현대경제연구원조차 부동산의 대세 하락을 경고하고 나섰다. 우리나라 가계 빚은 주로 아파트 토지 등 실물자산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출구전략이 본격화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거액의 대출을 얻어 집을 산 사람들은 주택가격 하락 손실에다 원리금 상환부담 가중으로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 부실은 금융기관의 부실과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분명한 것은 조만간 금리인상의 충격파가 닥칠 것이라는 점이다. 비상사태(글로벌 금융위기) 진압을 위해 투입한 과잉 유동성을 마냥 방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손절매를 하더라도 가계 빚을 줄여야 할 때라는 경고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케네스 로고프 미 하버드대 교수는 "한국의 부채 문제는 사람들이 깨닫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금융기관의 가계대출 축소가 본격화하면 집값 하락과 내수 위축이 불가피한 만큼, 경기부양책에서 서서히 탈출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려 시중자금을 흡수할 경우엔 부채 문제가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성태 전 한은 총재의 시각도 국내외 전문가들과 비슷했다. 정부와 대통령의 노골적인 견제로 끝내 금리인상 카드를 뽑지는 못했지만, 퇴임 직전까지도 "한국경제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가계부채"라는 경고를 잊지 않았다. 조만간 금리가 오를 것이니 대비가 필요하다는 시그널을 끊임없이 보낸 것이다.
김중수 총재의 가계 빚 인식
그런데 정부와의 정책 공조를 내세운 김중수 총재가 취임하면서 한은의 태도는 돌변했다. "가계부채가 늘었지만 금융자산도 많이 늘어 큰 위험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덕분에 은행 돈 빌려 집을 산 사람들은 한시름 덜게 됐다. 요즘 시장금리가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통장 정리를 해 보니 3개월 변동금리형 대출 금리가 0.3%포인트나 떨어졌다. 비둘기파(성장 중시의 저금리 지지자)인 김 총재가 등장하면서 저금리 상태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형성된 탓이다. 통화정책의 수장이 지금의 가계 빚은 위험 수준이 아니라고 공언하니, 5%대 성장률 전망치에 환호하며 경기회복세를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