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 삼성가의 일원인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애플 아이폰 열풍을 평가절하하는 삼성전자 내 일부 분위기에 트위터를 통해 일침을 가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얼마 전 만난 대학교수의 얘기가 떠올랐다. 최근까지 국산 스마트폰을 사용하던 그가 아이폰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꼭 바꿀 필요가 있었느냐고 묻자 인상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스마트폰 추세 오판 소중한 교훈
"이전 제품을 쓸 때는 전체 사용시간 중 70%가 전화나 문자고 나머지 30%가 무선인터넷이나 이메일 등이었는데, 아이폰을 가진 이후 그 비율이 정확히 30대 70으로 역전됐다. 전화나 문자 사용량은 대체로 일정하니 무선 인터넷이나 앱스토어 활용 등 다른 용도로 아이폰을 쓰는 빈도가 훨씬 늘어난 셈이다. 솔직히 각각의 장ㆍ단점이나 기술적 우열은 잘 모르지만 국산 스마트폰과 달리 아이폰을 쓰다 보면 휴대폰을 넘어'내 손안의 모바일 오피스'라는 말이 실감나게 와 닿더라."
정 부회장에게 '아이폰 3년 내 쇠퇴설'을 얘기한 삼성전자 후배는 이 말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물론 아이폰을 써보지도 않았으니 말뜻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 부회장이 이 후배에게 아이폰으로 실시간 TV를 보여주고 사진을 찍어 변환시켜주고 흥얼거리는 음원을 찾아주는 등 다양한 기능과 편리한 조작법을 보여주자 매우 혼란스러워했다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렇다고 이 후배를 나무랄 필요는 없다. 휴대폰 개념으로는 별 차이도 없는 경쟁사 제품에 과잉 찬사가 쏟아져 자존심을 구긴 만큼 아이폰을 씹는 소리에 귀가 솔깃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니 말이다. 더구나 아이폰에 들어가는 반도체 부문에서 독보적 기술력과 시장지배력을 자랑하며 세계 최대의 IT업체로 우뚝 선 삼성전자 아닌가.
며칠 전 발표된 1분기 사상 최대 실적은 이런 자부심을 그대로 뒷받침한다. 매출 34조원에 영업이익 4조3,000억원은 그 자체로도 기록이지만, 핵심 제품군의 비수기에 거둔 성과는 올해 150조원 매출에 15조~16조원대의 영업이익 전망을 한층 밝게 한다.
그렇다고 정 부회장 후배의 말을 일시적 속상함이나 애사심으로 돌릴 일은 아니다. 행간에서 삼성전자의 현주소와 고민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의 경영일선 복귀 명분과 시점이 실적 등 주변상황과 잘 어울리지 않아도 대체로 수긍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지금 여기의 삼성전자'가 아니라 '내일 저기의 삼성전자'를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다.
2년 전 아이폰이 출시됐을 때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위주로 급속히 재편되는 휴대폰 시장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당시엔 휴대폰 시장의 최강자 노키아를 좇아가는 데 바빴고 회사도 김용철씨 폭로 여파로 몹시 어수선했다. 그러나 이런 변명을 들이댈 틈도 없이 한국시장엔 아이폰 매니아들이 넘쳐난다. 때마침 '만능 PC'라는 아이패드가 아이폰 열풍을 잇고,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아이폰 4.0 운영체제까지 선보였다. "삼성의 저력이면 머지않아 아이폰을 능가하는 제품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보다 "삼성 조직은 하드웨어(HW) 중심 체질에 길들어 창의적 발상이 잘 먹히지 않는다"는 우려가 덩달아 커지는 형국이다.
절대지존인 반도체 등 여러 사업부문이 있는데 스마트폰 하나로 너무 요란 떤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때 도산위기에 몰렸던 하이닉스도 반도체 기술력과 이익률에서 삼성전자와 대등한 경쟁을 벌이는 현실이다. 일본업체의 견제도 심상치 않다. "10년 내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이 모두 사라질 수 있다"는 이 회장의 경고가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증거다.
제품보다 조직ㆍ의식이 유연해야
삼성 사장단은 답을 이 회장의 귀환에서 찾았다.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려면 전략적 집중에 대한 오너의 리더십과 결단이 긴요하다"는 근거에서다. 재계가 쌍수를 들어 환영했으니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런데 또 물음이 생긴다. 삼성은 오직 오너의 결단으로만 길을 찾고 비전을 만드는 조직인가. 삼성이 최근 소프트웨어 인력을 싹쓸이한다는 얘기가 시장에 무성한데, 조직과 의식의 소프트화가 앞서야 이 회장 체제의 뜻이 산다.
이유식 논설의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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