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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대하소설은 여인천하를 보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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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대하소설은 여인천하를 보는 느낌"

입력
2010.04.13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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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나 <태백산맥> 같은 대하소설의 저력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고전 대하소설을 통해 조선시대 사람들이 발휘했던 유장한 상상력의 진가를 많은 이들이 알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할아버지_아버지_아들로 이어지는 삼대(三代)의 서사를 통해 가문의 흥망성쇠를 다룬 '삼대록(三代錄)' 계열 고전 대하소설 5편이 조혜란(49) 이화여대 한국문학연구원 연구교수 등 고전소설 연구자 12명에 의해 현대어로 번역됐다. 이 계열 소설의 효시로 꼽히는 '소현성록'을 비롯해 '유씨삼대록' '현몽쌍룡기' '조씨삼대록' '임씨삼대록' 5편을 21권으로 번역한 것. 현존하는 삼대록 계열 소설 7편 중 '유효공선행록'과 '성현공숙렬기'를 제외하고 모두 현대어로 풀어낸 것이다.

이 작품들은 17세기 중후반부터 18세기 후반 무렵까지 쓰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번역본에는 각 작품마다 현대어 번역문과 원문, 주해, 가계도가 실렸다. 원고지 매수로 3만5,000매가 넘는 분량에, 고전소설 전공자 11명과 중세국문법 전공자 1명 등 12명이 4년을 꼬박 매달렸다.

'춘향전' '심청전' 같은 판소리계 소설과 달리 삼대록계 소설로 대표되는 고전 대하소설은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생소하다. 1960년대 중반에야 작품들이 발굴됐고 본격 연구가 진행된 것도 30년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삼대록계 소설은 양반 가문을 배경으로 대개 부부갈등, 처첩갈등, 고부갈등, 형제갈등 등 다양한 가족간 갈등 양상을 다루고 있다. "번역하면서 드라마 '여인천하'를 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는 연구자들의 말처럼 상층계급 여성들의 투기와 욕망 등에 대한 묘사가 특히 섬세하다.

삼대록계 소설은 장편소설로 취급되고 있는 김만중의 '구운몽'보다도 4배 이상 길고 작품마다 등장인물이 200~400명이나 된다. 이처럼 방대한 분량의 텍스트는 풍부한 해석의 결을 품고 있다. '조씨삼대록' 번역에 참여한 장시광(41) 경상대 국문과 교수는 "이 소설들은 지배층의 생활상을 묘사한 전형적인 양반소설"이라며 "다채로운 서사와 화려한 장면 묘사 등 기존의 고전소설과 다른 미감을 지녔다"고 평했다. 예컨대 양반문화를 상징하는 혼례 장면이나 헌수(獻酬ㆍ집안 어른의 생신에 자녀들이 술을 따르는 의식) 장면은 10장 이상 묘사가 진행된다.

'유씨삼대록'을 번역한 한길연(37)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는 "풍부한 근세 한국어의 보고라는 점도 돋보인다"고 말했다. 용모가 뛰어난 인물이 '그다지 잘 생기지 못했다'고 겸손해하며 쓰는 말인 '좀얼굴'이나, '얼이 나가 정신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 같은 어휘들이 그 예다.

연구진은 현대어 번역을 위해 북한에서 나온 '조선어사전'을 비롯해 '17세기 고어사전' '이조어 사전' '한어대사전' 등 다양한 고어사전을 참고했지만 소설의 특성상 개인어, 사투리 등이 섞인 어휘가 많아 오랫동안 토론에 토론을 거듭하기도 했다.

이 작업이 처음 구상된 것은 2002년께. 한국고소설학회, 한국고전여성문학회 등에서 자주 만나던 연구자들이 "작품은 번역하고 싶지만 개인이 하기에는 벅차니 함께 해보는 것은 어떨까" 의기투합, 번역팀이 꾸려지게 됐다. 조혜란 교수는 "고전 번역이라고 하면 한문자료를 먼저 생각하고 정부도 그쪽으로 먼저 지원하는데 이런 국문 고전 대하소설도 막상 읽어보면 만만히 읽히지 않는다"며 "한문자료뿐 아니라 한글자료의 번역에 대한 지원도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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