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의혹 사건 1심에서 한명숙 전 총리가 사실상 완벽한 무죄를 선고 받자, 한 전 총리의 또 다른 불법 자금 의혹 수사에 나선 검찰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검찰로선 건곤일척(乾坤一擲ㆍ하늘과 땅을 걸고 벌이는 마지막 대결)의 승부수를 띄운 셈이지만, 수사결과 및 법원 판단에 따라 조직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 후폭풍이 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검찰은 새로운 카드를 꺼냄으로써 일단 무죄 판결의 후폭풍을 어느 정도 희석시키는 효과는 거둔 것으로 보인다. 무죄 판결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야당을 제외한 여론의 반응이 예상만큼 크게 움직이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검찰의 고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변수는 두 가지다. 하나는 6.2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이번 수사에 대한 정치적 논란은 커질 것이 뻔하다는 점이다. 당장 한 전 총리는 무죄 판결 직후 "검찰이 다시 '한명숙 죽이기'에 나섰다"고 못박았다. 야권만이 아니다.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예비후보들을 비롯한 몇몇 여권 인사들조차 "한 전 총리에 대한 별건 수사를 중단하라"고 검찰에 촉구하고 있다. 여당으로서도 검찰 수사가 선거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듯하다.
또 하나는 한 전 총리 측이 검찰 수사에 순순히 협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곽영욱 대한통운 전 사장 사건에서처럼 한 전 총리 측은 검찰 수사의 부당성을 내세우며 선거 때까지 버틸 가능성이 높다. 검찰로선 늦어도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다음달 중순까지는 수사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적 부담을 안고 있는데, 한 전 총리가 버틸 경우 논란만 증폭되고 수사에 진전은 없는 힘든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검찰은 이미 상당부분 수사가 진척된 만큼 이르면 이달 안에 수사를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몇몇 보강조사를 거쳐 조만간 한 전 총리 소환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미 무죄 판결로 입지가 넓어진 한 전 총리가 검찰 소환에 응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지방선거 후보 등록(5월 13, 14일), 선거운동 기간(5월 20일~6월 1일) 등의 일정을 감안하면, 한 전 총리가 소환에 불응할 경우 피의자 조사 없이 불구속 기소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적 논란이 커질 경우 수사가 선거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도 예상할 수 있다. 특히 여론의 역풍이 예상 외로 커져 여권이 정치적 부담을 느끼고 선거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고 판단할 경우 수사가 동력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
검찰에게 최악의 경우는 한 전 총리가 수사를 받고 기소된 상황에서 서울시장에 당선되는 것이다. 검찰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무리한 기소를 두 번이나 했다는 점이 유권자들에 의해 간접적으로 인정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사건에서마저 최종적으로 한 전 총리가 무죄를 받게 될 경우 '정치 검찰'의 오명을 씻을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이번 수사가 검찰의 승부수가 될지 자충수가 될지, 주사위를 던진 후에 검찰의 고민이 더 커지고 있다.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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