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 존스(Bobby Jonesㆍ1902~1971)를 기억한다. 1930년 US 오픈과 아마추어, 브리티시 오픈과 아마추어 4대 선수권을 한꺼번에 획득했다. 당시 프로경기는 지금의 '내기 골프'와 비슷했고, 아마추어대회가 '공식 경기'였다. 그러한 위업과 함께 아직도 깨지지 않는 기록은 그가 '미국의 진정한 골프 영웅'이라는 점이다. 기계공학(조지아 공과대학), 영문학(하버드 대학), 법학(에모리 대학)을 잇달아 전공한 대목도 그렇지만, 상류층이면서 촌뜨기 첫사랑을 부인으로 맞아 가정에 헌신했던 삶이 미국 정서에 딱 맞았기 때문이었을 터이다.
■ 그는 28세 때 그렇게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바로 은퇴했다. 친구가 물었다. "자네는 미국 국민을 위해 위대한 업적을 남겼어. 할아버지를 위해 골프를 시작했고, 어머니를 위해 하버드 대학에 입학했고, 아버지를 위해 변호사 자격증을 땄지. 그리고 이제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은퇴를 선언했는데, 그렇다면 스스로를 위해선 뭘 할 참인가."그는 고향(조지아주) 집 앞의 황무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좋은 골프대회를 만들고 싶어." 3년 뒤(1933년) 오거스타 골프장은 완성됐고 미국 최고의 대회가 됐다. 8일 시작된 ' PGA마스터스'가 그것이다.
■ 성 추문으로 잠시 은퇴(?)했던 타이거 우즈가 이 오거스타에서 재기의 시동을 걸었으니 좀 아이러니다. 지난해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퍼를 꼽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우즈는 잭 니클로스와 함께 항상 1, 2위를 다퉜다. 부동의 3위는 바비 존스였으며, PGA 최다 우승자 벤 호건도 변함없는 4위를 지켰다. 지금 우즈의 팬들은 '신중한 관심'을 표하고 있지만 후원사들은 그의 상업성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거스타 골프장 회장은 아니었다. 그는 "우리의 영웅은 아이들의 롤(역할)모델이 되어 주기를 기대했던 국민을 실망시켰다"고 평가했다.
■ 첫 날 우즈와 같은 조로 라운딩한 최경주는 "골프장 밖에서 일어난 일을 놓고 골프장 안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듯하다"고 말했다. 현지 미국 언론을 향한 '미국식 멘트'였으리라 짐작한다. 우리의 유명 스포츠맨 중에서 우즈와 비슷한 경우를 찾기 어렵다. 그것의 10분의 1 정도만 드러나도 언감생심, 재기할 생각을 접었을 터이다. 우즈가 실력으로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말하자 오거스타 골프장 회장은 말했다. "경기력보다 진실성으로 평가 받아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멋진 스윙이 아니라 밝은 미소를 원하고 있다"고.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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