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父)를 공부한다? 주식ㆍ부동산 투자 비결 등 부(富)에 대한 공부가 아니다. 결혼해서 아이 낳은 남성이라면 자연스레 얻는 지위인 '아버지'를 굳이 배우겠다는 아버지들이 늘고 있다.
온라인교육업체 휴넷의 가정행복발전소(thehappyhome.co.kr)는 지난달 '행복한 아버지학교'라는 온라인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1기(3월 2~29일) 수강생을 모았는데, 30~50대 아버지가 무려 300여명이나 참여했다.
돈 들고(교육비 5만5,000원) 4주(교육기간)나 공을 들여야 하는 '아버지 되기'비법을 배우는 이들은 아버지로서 특별한 흠이 있거나 결격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중견기업 대표부터 대기업 중역, 잘 나가는 연구원 등 꽤나 성공한 축에 끼는 이들도 있다. 이중 고경석(47) 에스제이에너지 대표, 이수경(55) 짚라인코리아 부회장, 조근수(52) 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 이사, 조형건(37) 동양기전 연구소 과장 등 4명의 수강생을 만났다.
아버지라 불리기 부끄러웠다
고 대표의 회사는 지난해 연 매출 24억원을 올렸고, 올해는 두 배가 넘는 성장을 기대하는 중견업체다. 번듯한 직함과 사회적 인정, 경제적 안정까지 누가 봐도 성공한 인생 삼박자를 갖췄다.
그의 어린 시절은 넉넉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여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별로 없다. 부모 손을 잡고 나들이 가는 또래가 마냥 부러웠다. 그의 외로운 유년은 '아버지가 되면 아이들과 많은 추억을 만들 것'이란 다짐을 하게 했다.
현실은 달랐다. 1983년 대우중공업에 입사한 뒤 앞만 보고 뛰었다. 밥 먹듯 야근했고 휴일 출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가난이 지겹기도 했지만 경제적인 기틀을 마련하는 게 가장의 최우선 책임"이라 여겼기 때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건만 정작 가족은 멀어져 있었다. 고 대표는 "어느 날 문득 '필요할 때 아버지는 어디 있었느냐'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이 부회장은 비교적 원만한 부부관계와 달리 아이들과는 순탄치 않았다. 큰 아들이 사춘기이던 고교시절, 귀 뚫은 것을 나무라는 말이 몸싸움으로 번졌고 이후 아들과는 담을 쌓았다. 그는 "사회적으로는 나름 성공했는데 가장 사랑하는 아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견딜 수 없었다"고 했다.
조 이사와 조 과장도 마음은 그렇지 않았는데 팍팍한 삶에 치여 자녀들과 소통을 게을리했던 스스로를 반성했다.
아버지의 귀환
행복한 아버지학교는 이처럼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장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고민의 해결을 돕기 위해 마련됐다. 자녀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좋은 아버지가 되는 길은 무엇인지 '학습-실습-실천' 3단계를 거친다. 단계마다 '아버지란' '애정 표현하기' '문자 보내기' 등 과제를 수행하며 겪은 변화를 수강생끼리 나눈다. 한 달간의 온라인교육은 어떤 효과를 냈을까?
"교육 중에 자녀의 꿈과 존경하는 인물을 적어오는 과제가 있었는데, 아들(27) 녀석이 '아버지'라고 쓰더라고요. 그간 서로 말도 잘 안 했는데… '속보이는 답은 쓰지 말라'고 했더니 '진짜 존경해요. 평소에도 늘 그랬고 제 소신이에요'라고 하지 뭡니까, 기분 좋은 충격이었다니까요. (껄껄껄)"(이 부회장) 아내도 흐뭇하게 웃었다고 했다.
"과제이긴 했지만 결혼 7년 만에 아내와 남매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썼어요. 답장까지 받아 연애시절로 돌아간 듯 했죠. 딸애(6)가 그림편지를 줬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었죠."(조 과장)
"부친(92)과 다니던 목욕탕에 말썽꾸러기 둘째(18)놈이 합류했어요. 3대가 서로 등을 밀어주는 재미가 쏠쏠하고 (아들이) 든든하기도 하고. 그런 경험 못 누려보셨죠?"(조 이사)
"(휴대폰 문자를 보여주며) 내 딸애(17)도 만만치 않아."(고 대표) 그는 '아빠는 나의 꿈이자 감동'이라고 적힌 딸의 문자메시지를 한참이나 보여주더니 "대학 1학년인 아들도 안아주면 싫지 않은 표정"이라고 자랑했다.
이들은 자녀와의 관계 회복은 기본이고, 덤으로 오랜만에 아내의 인정까지 받았다고 했다. 왁자지껄한 자랑은 한참이나 계속됐다. 아버지다운 아버지가 되는 비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아이들 눈높이를 맞추려 꾸준히 애를 쓴 결과"라는 것. 덧붙여 자녀교육관련 독서와 원칙 세우기도 꼽았다. 물론 4주간 촘촘히 짜인 온라인 프로그램이 이들을 본디 아버지의 자리로 안내했다.
"주저하지 마세요. 좋은 아버지상을 배우면 새로운 행복을 느낄 겁니다. 가족들은 진정한 아버지의 귀환을 다들 바라거든요." 5일 시작된 2기 교육엔 배가 많은 610명의 아버지가 몰렸다고 한다.
이성기 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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