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땅 개발에만 주력했던 서울의 여러 동네가 역사와 테마를 가진 특색 있는 마을로 바뀌고 있다. 지역 유례를 발굴하기도 하고, 옛 고풍은 그대로 보존하는 등 주민 스스로가 마을에 멋과 색깔을 입히고 있다.
11일 중랑구 망우3동 용마산길. 밋밋하고 낡은 보도블록이 깔끔한 화강석 블록으로 새 단장을 했고, 군데군데 산뜻한 노란색 보도까지 있어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밤에 다양한 색채를 뽐내는 LED 조명도 곳곳에 설치돼 있다. 길가엔 야생화와 수목이 우거진 화단이 세워져 숲 속 노란색 길을 따라 '오즈의 나라로 가는 도로시'가 연상된다.
서일대학에서부터 망우사거리까지 이어진 왕복 1.2㎞ 용마산길 구간은 지난해부터 '상상문화거리'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이달 말에는 하늘을 나는 용마 전설을 다룬 '용마이야기', 겸재 정선이 거닐었다는 길에 얽힌 '겸재이야기', 망우산에 있는 고구려 산성에서 착안한 '온달장군 이야기' 등 다섯 가지 마을 스토리가 담긴 패널 등이 들어선다.
명물거리는 주민들이 지난해 초 문화ㆍ조경ㆍ사학 전문가들로 구성된 실무추진위원회를 조직하면서 시작됐다. 장진호(60) 추진위원회 위원장은 "파리의 샹젤리제나 도쿄의 신주쿠처럼 아름다운 거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구청과 함께 계획 단계에서부터 참여해 왔다"고 말했다.
영등포구 문래동도 마을 유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주민 스스로 '목화테마마을'을 조성 중이다. 문래동은 지명도 '문(文)익점이 목화를 전래(來)했다'는 뜻으로 지어졌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섬유 산업과 뗄 수 없는 곳이다.
주민들은 지역의 유래와 역사를 살려, 지하철2호선 문래역 인근 문래공원에 목화 묘목을 심어 목화꽃 군락지를 조성하는 등 지난해부터 목화 가꾸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14일에는 '1가정1목화 키우기' 운동으로 목화씨 분양 행사도 가질 예정이다. 또 동 자치회관 내에 면화ㆍ의복사 교육장을 구청과 함께 올해 하반기까지 조성해 어린이들과 주민들이 문래동의 역사와 섬유산업의 발전, 옷 만드는 과정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홍제3동 주민들도 홍제천변 불모지에 30여가지 원예작물을 식재하는 등 자투리땅을 자연체험학습장으로 조성해 주민참여형 공동체 복원에 이바지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동네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는 마을도 있다. 무분별한 개발로 지역 공동체가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성북구는 성북동 300번지 일대, 옛 성북2동 주민센터에서 동방대학원대학교에 이르는 이태준길 주변 4만4630㎡를 역사마을로 지정하고 본격적인 조성에 들어갔다. 이곳에는 1900년대에 지어진 소설가 이태준 고택과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 의친왕 이강이 35년 간 별궁으로 사용했던 성락원이 있다. 또 누에치기를 처음 했다는 중국 고대 황제의 황비 서릉씨를 누에신(잠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선잠단지, 만해 한용운이 생활했던 심우장 등의 문화재와 길상사, 가구박물관의 등의 명소가 밀집돼 있는 주택가다.
성북구는 2011년까지 단계적으로 이곳에 자연친화형 담장, 생태화단, 유실수 거리, 쌈지공원, 오솔길 등을 조성해 주택지역을 보존할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전통문화 가치에 대한 지역 주민의 자발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총체적 삶의 질 향상과 함께 마을 주민들 간 유대감 강화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박관규 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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