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눈과 이상저온, 사상 최저의 일조량이 겹친 유례없는 동해로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잇다. 3월 이상기후에 전국 곳곳에서 극심한 농작물 피해를 입어 충남, 경남·북 등에서는 농민들이 특별재해지역 선포나 농업재해 인정을 요구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비닐하우스 농가가 큰 타격을 받았다. 경북도의 경우 참외와 딸기, 포도, 수박, 토마토, 오이 등 도내 9,133㏊의 시설채소단지 중 90%가 넘는 8,260㏊의 농작물이 피해를 입었다. 4,900여 가구가 3,892㏊ 규모의 참외를 재배하는 경북 성주에서는 과수 안에 물이 차서 먹지 못하는 ‘발효과’가 생긴 참외가 677톤이나 된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90톤에 비해 7.5배나 많다. 이에 따라 참외 생산량은 6일 현재 15㎏ 기준 3,900 상자로 지난해 같은 기간(1만7,000상자)의 23%에 불과하다. 여기에 딸기는 잿빛곰팡이병, 수박과 멜론은 덩굴마름병 피해를 입는 등 시설 채소류의 병충해 발생 빈도도 예년의 3배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충남지역 시설재배농가들도 대부분 쑥대밭이 되면서 노자재 상환시기가 도래한 상당수 농가들이 줄도산 위기에 놓였다. 이로 인해 전국농민회 충남도연맹 소속 농민들이 6일 집회를 열어 자연재해 인정과 특별재해지역 선포 등 정부지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3월 말까지 때 아닌 폭설이 내린 강원도에서는 과수농가의 피해가 심각하다. 원주지역은 복숭아 재배면적 301ha 중 70%에 해당하는 210ha가 동해 피해를 입었다. 잦은 눈으로 토양의 습도가 높아 묘목의 밑동이 썩어 버렸다. 이 상태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어 사실상 올해 농사를 망쳤다. 원주에서 복숭아를 재배하는 강모(61)씨는 “잦은 눈에 꽃샘추위까지 이어져 묘목 대부분이 망가진 상태”라며 “설사 열매를 맺는다고 해도 일조량 부족으로 당도가 떨어져 상품가치가 없다”고 한숨을 내뱉었다.
평창 대관령이 주산지인 봄감자도 저온현상으로 씨앗이 제대로 자라지 못해 파종 시기가 2주일 이상 늦춰져 제값을 받기 어렵게 됐다. 또 전남의 대표적인 월동 작물인 마늘이 작년보다 키가 2cm 가량 덜 자랐고, 잎 숫자도 지난해 보다 줄어드는 등 전국 곳곳에서 혹독한 이상기후 악영향을 겪고 있다.
작황이 이처럼 풍비박산이 된 데는 식물생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조량 부족 탓이 컸다. 3월 전국의 평균 일조 시간은 125.1시간 1905년 관측 이래 최저로 평년 일조량의 61%에 불과하다.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날도 무려 14일로 2005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이상저온에도 시달렸다.
이러다 보니 딸기, 수박, 참외 등 과일 뿐만 아니라 대파, 배추, 무 등 채소류도 출하량이 크게 줄어 시장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 연구원 신용광 채소관측팀장은 "3월 이상기후로 채소들이 전반적으로 자라지 못하거나 상태가 좋지 않고 과일은 수정되어 열매가 열리는 착과율이 떨어졌다"며 "농작물 가격이 5월 중순까지 계속 이상 기후의 영향을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피래농가는 피가 마르는 데도 정부대책은 더디기만 하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일조량 부족에 따라 발생하는 농작물 피해도 자연재해로 볼 것인지 여부를 재보고 있다”며 “조만간 농어업재해대책 심의위원회를 열어 최종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구=전준호기자 jhjun@hk.co.kr
춘천=박은성기자 esp7@hk.co.kr
김혜영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