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밤 서해 백령도 해상. 승조원 104명을 태운 초계함 천안함은 달빛 아래 유유히 물길을 가르며 나아갔다. 병기장 오성탁 상사는 지하 2층 격실에서 여느 날과 다름없이 업무보고를 준비했고, 후타실에선 운동 마니아들이 체력 단련에 여념이 없었다. 함정 좌ㆍ우현에서 경계 근무를 하는 견시병들조차도 다가올 엄청난 사고를 예측하지 못했다. 밤 9시22분께, '쿵~쾅~'하는 귀가 찢어질 듯한 폭발음과 함께 함정 후미와 46명의 장병들은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7일 오전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서 열린 '천안함 생존자 기자회견'자리. 참석 장병들의 증언은 마치 어제 일을 설명하듯 생생했다. '살아남은 자'들이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천안함 침몰과 당시 급박했던 상황, 그들이 생각하는 침몰 원인 등을 분야별로 정리한다.
■침몰 전 "달빛 아래 모든 게 정상 작동 중이었다."
-사고 해역에 왜 갔고 사고 직전 상황은 어땠나.
▦최원일 함장= "천안함에 2008년 8월 부임해 20개월 간 근무했다. 그간 16회 정도 이곳에서 임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이 지역에 자신있게 알고 있다. 당시 임무는 도발대비태세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작전관 박연수 대위= "사고 직전까지 정상 근무 중이었고, 특이사항이 있으면 작전관인 제게 보고됐을 것이다. 따로 보고된 상항이 없는 걸로 기억한다. '상황'이란 용어를 붙일 만한 특별한 것이 없었다"
▦음파탐지병 홍승현 하사= "음파탐지기 상 특별 신호가 없었으며 정상근무를 했다."
▦기관장 이채권 대위= "기관장은 상황이 있을 때나 근무 시 기관조정실에 위치한다. 당시에는 워드 작업을 할 게 있어서 다른 곳에 있었다. 긴급한 상황이 있었다면 고속추진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제가 당연히 기관조정실에 있어야 한다. 사고와 관련해 조짐이 없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언할 수 있다."
-후타실에 있던 장병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병기장 오성탁 상사= "운동기구 담당인데 그 시간 대면 거기에 가 있었다. 그날은 업무보고를 준비하는 것 때문에 사고 발생 한 시간 반 전에 가서 운동했었다. 이번에 실종된 5명은 항상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어서 거기에 운동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전준영 병장= "보통 운동할 때는 속옷 내의와 반바지를 입고 한다. 운동을 했다면 당시 복장이 그랬을 것이다. 나도 침실에서 쉬고 있었는데 특별한 상황이었으면 근무복을 입었을 것이다. 당시 속옷을 입고 침실에서 쉬던 상태였다."
■사고 당시 "귀가 아플 정도로 폭발음이 컸다"
-천안함 침몰 시각은.
▦박연수 대위= "당직 사관으로 마지막으로 확인한 시간은 컴퓨터 모니터 상에 나타난 오후 9시24분이었다. (컴퓨터 오차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의 정확성은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제가 아는 바로는 (오후9시)24분이었다."
▦최원일 함장= "당시 함장실에서 책상에 앉아 KNTDS(해군전술지휘통제시스템) 자료를 검색하던 중 모니터 상에 오후9시23분으로 확인됐다. 항해 중에는 매시간 두 번(정각과 30분) 기상보고를 하는데 우리 배는 통상 5, 6분 전에 하기 때문에 (사고 시각이) 25분이라고 생각했다."
▦통신장 허순행 상사= "전탐실 후부 계단에서 오후9시14분부터 18분까지 집사람과 딸과 통화했다. 집사람이 임신한 상태라 그와 관련한 통화를 했고 딸에게는 엄마가 많이 힘드니까 잘 도와드리라고 얘기했고 바로 통신실에 복귀했다. 당시에는 아무런 소음도 느낄 수 없었다."
-침몰 당시 상황은.
▦오성탁 상사= "사고 순간에 지하 2층 격실에서 업무보고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꽝' 하는 귀가 아플 정도의 큰 소리와 함께 몸이 공중으로 붕 떴고 정전이 됐다. 컴퓨터가 얼굴을 쳤고, 정신을 차리니까 암흑세계였다. 우측에 출입문이 있을 것을 알기 때문에 잡으려 했으나 없었다. 발에 걸리는 게 있어서 잡아 보니 그게 손잡이었다. 이미 배가 우현으로 90도 뒤집힌 상황이었다. 가족들이 떠올랐고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문 주위에 있는 컴퓨터 등 집기를 치우고 15분만에 문을 나왔다."
▦전탐장 김수길 상사= "'꽝꽝' 소리가 두 번 났다고 느낀 것은 처음에 제가 자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처음 '쿵' 소리와 동시에 침대에서 빠져 나왔고 어디에 부딪힌 줄 알고 전탐실로 향하려고 했다. 다시 3~5초 내에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폭음소리 같았고 천정에 있는 전등 등이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배가 기울었다는 느낌을 받았고 외부 소화호스를 타고 5~7분 걸려 외부로 탈출했다."
▦내연장 정종욱 상사= "정전됐을 때 함미로 가서 발전기를 돌려 전원을 복구하려고 했지만 함미를 바라봤을 때 벌써 절단되고 없었다. 함미 부분 바다에 달빛이 보이는 것을 보고 함미가 없다는 걸 알았다."
-구조는 어떻게 진행됐나.
▦포술장 김광보 중위= "(군 통신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휴대폰으로 함대 작통실에 전화했고 정신이 없어 당시 어떤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함대 교환대를 이용해서 상황장교에게 위치와 눈에 보이는 상황 등을 두서없이 통화했다"
▦박연수 대위= "좌현 통로를 이용해 외부로 나온 이후 함장으로부터 구조세력(구조대)이 선체 어느 부분으로 접근해서 대원들을 어느 방향으로 이함시킬지 판단하는 임무를 지시받았다."
▦통신관 박세준 중위= "당시 전투상황실에서 당직근무를 했는데 많은 장비가 아래로 떨어져 거기에 끼인 하사 2명을 구조한 이후에 위로 올라와서 추워하거나 불안해 하는 대원들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환자를 먼저 구조하도록 했고 인원관리에 신경을 썼다."
▦김덕원 소령= "배가 우현으로 기운 상태에서 함장실 앞의 외부 도어를 풀고 밖으로 나왔다. 함미가 보이지 않았고 대원들이 갑판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함장실이 잠겨있어서 대원들이 함장을 구출한 뒤 함장 지시에 따라 침착하게 대처하면서 구조팀이 오기를 기다렸다. 고속정이 계류 가능한 위치를 확인했으나 마땅한 곳이 없다고 판단해 구명정을 통해 이동하도록 했다."
▦최원일 함장= "갇힌 상태에서 저를 구출하려는 통신장에게 상황을 보고하라고 했고 포술장 김광보 중위가 함대에 상황을 보고했다고 했다. 구출된 이후 정다운 중위 등 2명이 제 지시에 따라 구조 상황 등에 대해 방송 형식으로 함대에 보고했다. 이후 해경정으로 가서 장병들은 해경정 침실로 배치됐고, 저는 구조자 명단을 파악해서 보고했다."
■사고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 "뭐에 맞는 것 같았다"
-사고 원인은 무엇으로 보는가.
▦조타장 김병남 상사= "배가 암초에 걸리게 되면 찢어지는 소리가 나고 뻘에 걸리게 되면 배가 출렁거린다. 그런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외부 충격에 의한 것으로 판단된다."
▦오성탁 상사= "탄약을 담당하는 책임자이기 때문에 가장 잘 안다. 그 순간에 화염이 있다면 불이 날 것이고 화약냄새가 배에 진동할 것이나 전혀 냄새가 나지 않았다."
▦이채권 대위= "함정에서 물이 샌다고 말하는 것은 경험이 적은 병사가 파이프에 맺힌 응결수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오해하는 수가 많다. 외부에서 배에 물이 스며드는 일은 전혀 없었다. 천안함에 이상이 없었으며 서면으로 말씀드릴 수 있다. 출항 2, 3일 전부터 함정이 작동하기 때문에 노후나 장비 이상은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
▦최원일 함장= "과학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당시 오후 10시32분 함대와 통화할 때 충격을 받는 것 같다고 보고했다. 외부 충격으로 느꼈다. 당시 구조를 기다리는 상황에서도 장교들끼리 '뭐에 맞는 것 같았다'고 얘기한 것 같다"
▦정종욱 상사= "(내부 폭발 가능성과 관련해) 디젤엔진으로 6노트 속도로 항해하고 있었다. 군 생활을 한 지 17년 정도 됐는데, 배가 내부에서 폭발했다는 얘기를 듣질 못했고 자료도 보지 못했다."
▦갑판병 황보상준 일병= "(백령도 초소에서 오후 9시16분경 큰 소음을 들었다는 것에 대해) 당시 함정 좌현 외부에서 당직을 서고 있었는데 일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허순행 상사= "(오후 9시16분 상황 관련해) 특이 상황이 있으면 인근 함대로 보고가 되는데 당시 유무선 통신망에 보고되지 않았다. 안쪽에선 일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박기수 기자 blessyou@hk.co.kr
박철현 기자 k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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