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의료원장과 한국금연운동협의회장을 지내며 음으로 양으로 국민건강 증진에 매진해 온 김일순(73) 연세대 명예교수가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고령인의, 고령인에 의한, 고령인을 위한 나라'를 위한 첫 걸음으로 '한국골든에이지포럼(Korea Golden Age Forum)'을 결성한 것이다. 지난 23년간 한국금연운동협의회를 이끌며 숱한 성과를 이루어낸 그가 이번에는 우리 사회에 어떤 새로운 물결을 일으킬 지 자못 기대가 크다.
윌리엄 예이츠는 '비잔티움으로 항해(航海)'라는 시에서 '늙은이는 비천한 존재일 뿐, 작대기에 걸쳐놓은 넝마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초로에 들어선 시인이 들여다본 노년의 모습이다.
늙은이는 작대기에 걸쳐놓은 넝마가 아니다
이런 시각에 정면으로 맞서는 사람이 바로 김 교수다. 그는 지난해 10월28일 '고령화 문제는 고령자 스스로 풀자'는 기치 아래 의료ㆍ언론ㆍ문화ㆍ법조계에서 활동한 원로들을 모아 한국골든에이지포럼을 만들고, 김용문 전 보건복지부 차관과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이 포럼에는 이성낙 가천의대 총장과 이동준 전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김의숙 전 대한간호협회장, 김승조 전 가톨릭의료원장, 기세채 한국통합의학방송센터 사장, 이광영 대한암협회 부회장, 전세일 CHA의대 대체의학대학원장 등 내로라 하는 인사가 대거 참여하고 있다.
포럼은 지난달 25일 청와대와 보건복지부, 노동부에 노인 기준연령을 상향 조정하자는 건의문을 보냈다. "노인 기준연령인 65세는 국민의 평균수명이 50세 중반밖에 되지 않던 1950년대 인구학자들이 정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이 기준에 따라 전체 인구의 11%인 550만명을 노인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2050년에는 노인 인구가 38.2%(1,900만명)에 이르러 국가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고령자 문제 해결은 '노인 연령 재조정'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김 교수는 "건강한 65세면 충분히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데도 노인으로 취급당하며 스스로 무기력하게 살아간다"며 "이런 사회 분위기부터 바꿔야 한다"고 역설한다.
노인 기준연령을 높이면 복지혜택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에 대해 김 교수는 "실제로 65세를 기준으로 한 복지혜택은 '지하철 무료 승차권' 정도에 불과하다"며 "사회에서 일찍 퇴출되는 보상으로 지하철 무료 승차권을 받는 셈"이라고 말한다.
3년 전 노인문제에 관심
김 교수가 노인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3년 전부터다. 언론에서 65세 이상의 고령자가 늘어나 미래가 암울하다는 기사를 봇물처럼 쏟아내던 시점이다. '젊은이 6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노령사회 진입'이라는 보도를 보면서 자신이 쓸모 없는 존재가 된 것 같은 자괴감을 느꼈다. 주위를 둘러보니 노인 문제 해결에 가장 큰 걸림돌은 노인 스스로 느끼는 박탈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왜 유독 우리나라 고령인들의 박탈감이 심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80대 노령층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고 한다. 밤늦게까지 공부해야 하는 어린이나 직장을 잡으려고 애쓰는 젊은이, 은퇴 불안감으로 시달리는 50대보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고령인이 더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는 벤저민 콘웰 미국 시카고대 사회학과 교수의 조사결과를 빌려 "고령인이야말로 가장 스트레스가 적고, 수입이나 명예를 위한 경쟁부담이 적으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갈파했다.
김 교수는 결국 고민 끝에 한국골든에이지포럼을 결성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포럼은 고령인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학술연구를 하고, 고령인의 삶의 질 향상과 건강증진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또한 고령인 스스로 삶의 방식을 바꾸고 새로운 사회와 가족관계를 정립할 수 있도록 교육 연구사업도 추진 중이다.
이외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화로 인해 겪는 불편과 고통을 완화해주는 제품을 추천하기도 한다. 시중에 나와 있는 식품과 신발, 의류, 화장품 등 생필품은 젊은이를 타깃으로 제작돼 있어 고령인에게는 선택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이를 두고 "고령인은 젊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더부살이'하는 꼴"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고령인들의 불편을 완화하기 위해 최근 고령인 용품 전문점 '100세 건강'과 제휴해 고령인 용품을 추천하고 있다.
금연운동 경험 노인문제 해결에 적용
그가 1988년 연세대 보건대학원장 시절에 만든 한국금연운동협의회도 시작은 미약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2월 회장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담뱃갑에 흡연 경고문구를 넣고, 흡연 규제를 위한 국민건강증진법 제정을 추진하는 등 끝은 창대했다. 앞으로 고령인 문제를 향한 그의 행보가 주목 받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현재 김 교수는 부인 김동연(70)씨와 함께 제주시 영평동에서 주로 살고 있다. 1985년 이웃에 珥?제주 사람의 권유로 평당 1만원씩 1,300만원이라는 당시로는 '거금'을 들여 장만했던 곳이다. 그의 제주 집 뜰은 과일나무 천국이다.
사과와 배, 비파, 커피, 감, 매실, 대추, 앵두, 블루베리, 블랙베리 등 30여 종 100여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김 교수는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는 제주도에서 나무 가꾸기에 푹 빠져서 살다,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서울에 올라와 생활한다. 서울에 오면 시간을 쪼개 연세대 보건대학원에서 강의하랴, CEO를 맡고 있는 '헬스로드'(건강포털회사)의 업무보랴, 금연운동협의회와 골든에이지포럼에 관여하랴, 몸이 서너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2007년 퓰리처상 수상자인 코맥 맥카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 에 나오는 '나이가 들면 자기가 행복해지고 싶은 만큼 행복한 법이다'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노인을>
■ 김일순 교수가 말하는 '숨겨야 할 노인본색 8가지'
예방의학의 대부로 통하는 김일순 연세대 명예교수는 "예전에는 안 그러더니 요즘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기 시작하면 '아, 내가 늙기 시작했구나'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노인네 취급 당하지 않으려면 나이를 숨길 게 아니라, 아래의 '노인본색'부터 숨겨야 한다고 귀띔한다.
(1) 얼굴이 무표정해진다. 화난 듯 무표정한 얼굴은 상대방에게 호감을 얻지 못한다. 얼굴에 주름과 검버섯이 가득해도 미소나 웃음은 상대방에게 나이를 잊게 만드는 효력이 있다.
(2) 불만이 많아지고 잔소리가 심해진다. 나이가 들면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이나 젊은이의 행동 등 모든 것이 못마땅하다. 하지만 실제로 모든 면에서 현재가 과거보다 낫다. 아무리 나는 선의의 비판을 한다고 해도 젊은 사람들에게 반감만 살 뿐이다. 단지 우리와 다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
(3) 사소한 일에도 화를 잘 낸다. 화를 잘 내는 것도 노화현상 때문이다. 화를 내면 상대방뿐만 아니라 화를 낸 자신의 건강에도 해롭다. 화를 다스리는 법만 익혀도 수명을 크게 늘릴 수 있다.
(4) 감사하다는 말에 인색해진다. 나이가 들면 젊은 사람들의 경로를 당연시 받아들이는데, 이 역시 스스로 노인임을 인정하는 셈이다. 항상 감사를 표시하고 칭찬하는 습관을 기르자.
(5) 몸에서 냄새가 난다. 노화로 피부대사가 불완전해져 자칫 냄새가 날 수 있다. 항상 몸을 깨끗이 하고 내복 등 옷을 자주 갈아 입자.
(6) 주위가 지저분해진다. 나이가 들면 시력이 나빠져 주위의 청결상태를 확인하기 힘들어진다. 항상 주위를 깨끗하게 하고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자.
(7) 옷 색깔이 칙칙해진다. 나이가 들면 밝고 화려한 색깔의 옷을 기피하게 된다. 노화로 인해 이런 색깔이 불안하고 어색해지기 때문이다. 밝고 화려한 색깔은 활기차 보일 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좋다.
(8) 허리가 구부정해진다. 운동을 하지 않아 척추가 굳어지기 때문이다. 나이에 맞는 체조 등으로 체형을 반듯하게 유지하도록 하자.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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