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비 6,500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국립자연사박물관을 유치하려는 지방자치단체 간의 경쟁이 뜨겁다. 하지만 주무 부처인 문화관광체육부는 언제, 어떻게, 어떤 규모로 건립할 것인지 방향을 잡지 못한 상태라 유치전에 뛰어든 지자체들은 속이 타 들어가고 있다.
다시 살아난 불꽃
국립자연사박물관 설립이 추진된 것은 1996년이다. 당시 문화체육부(현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비 타당성 조사를 거쳐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지원을 받아 후보지를 검증했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박물관 건립 이야기는 소리 없이 사라졌다. 약 10년 간 유야무야 됐던 불씨는 문체부가 내부 검토를 시작하자 서울 노원구, 경기 화성시, 인천 강화군 등이 잇따라 유치에 뛰어들며 다시 타 오르기 시작했다. 지자체들은 박물관 건립이 전액 국비사업이라 지역발전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판단하고 있다. 14년 전 추정 사업비가 6,500억원이라 현재 시세로는 1조원이 넘어갈 수 있다는 게 지자체들의 판단이다.
국책사업 따내기 진검 승부
노원구는 불암산 자락에 박물관을 유치하는 계획을 세우고 입지 및 경제적 타당성 분석을 마쳤다. 서울시와 문광부에도 지속적으로 건의 중이고, 자연사 유물 소장자들에게 약 130만점의 유물도 기증받았다. 서명운동 참여 인원은 100만 명에 육박한다. 인근 도봉·중랑·강북·성북구와도 양해각서(MOU)를 맺어 지원을 받고 있다. 구는 기증받은 유물들을 보관하기 위해 5월 상계동에 수장고를 세운다.
송산면 공룡알 화석지를 밀고 있는 경기도와 화성시도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건립 타당성 및 기본 구상 용역을 발주한 데 이어 올해 2월에는 대통령에게 유치를 건의했다. 미국 스미소니언 및 프랑스와 영국 국립자연사박물관 등과 전시자료 제공을 위한 협약도 추진한다. 이달과 9월에 공룡알 화석지의 강점을 알리기 위한 심포지엄을 열고, 10월에는 세계생물다양성정보기구(GBIF) 총회도 개최한다.
강화군은 올해 3월 국립자연사박물관 용역 착수보고회를 갖고 타당성 분석에 돌입했다. 유치 희망지역은 고인돌 유적이 많이 남아있는 하점면 일대. 지원사격에 나선 인천시는 “10년 전 강화가 최적의 입지를 갖췄다는 것이 검증된 만큼 유치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이밖에 전북 남원시, 강원 영월군, 경상북도 등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실체는 없다
정작 키를 쥔 문광부는 지난해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주변에 국립자연사박물관, 한글문화관, 국립민족학박물관 등을 세워 박물관 콤플렉스를 조성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다른 지자체들이 “용산에 미련을 둔 것 아니냐”며 강하게 반발하자 문광부는 “구상일 뿐”이라고 진화했다. 따라서 국립자연사박물관에 대해서는 입지나 규모, 콘텐츠 등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 유치에 열을 올리는 지자체들은 “짓기는 짓는 것인지, 언제 할 것인지 빨리 방침이라도 정했으면 좋겠다”, “소모적인 경쟁과 예산 낭비가 없도록 명확하고 투명하게 진행하자”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문광부 관계자는 “올해 4월 자연사박물관 전시콘텐츠 연구용역이 완료돼야 조성 방향과 전시물 확보 방안 등의 윤곽이 나온다”며 “혼란을 막기 위해 가급적 빨리 부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창훈 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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