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항공사 사장이라면 탈북자를 승무원으로 뽑겠냐고 누가 반문하더라고요. 더 오기가 생기더군요. 하늘을 나는 걸 상상만 해도 제 심장은 이렇게 뜨거워지는데…."
한국에 온 지 올해로 8년. 김하늘(25)씨가 자신의 '남한' 적응기를 담은 책 <꽃이 펴야 봄이 온다> (민들레 발행)를 펴냈다.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셋넷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7명의 친구들과 함께다. 책에는 승무원을 꿈꾸는 김씨를 비롯해 8명의 탈북 청소년들이 극복해온 고난과 꿈을 향한 여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꽃이>
1985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태어난 김씨는 지난 2002년 두 차례의 시도 끝에 한국 땅을 밟았다.
"첫 시도 때 적발돼서 보름간 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 벌을 받았어요. 오른쪽 다리 신경이 끊겨 마비 됐죠. 그 다리를 이끌고 다른 곳으로 이송되면서 꼭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을 거쳐 어렵사리 한국에 입국한 것은 2002년 12월. 북한 국경을 넘은 지 꼬박 3개월 만이었다. 하지만 김씨는 "그 이후 겪은 고통이 수개월간 낯선 이국을 배회하던 시간의 고통보다 더 컸다"고 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다리를 진찰했던 의사는 '어려울 것 같다. 상태가 악화해 상반신 마비까지 올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다행히 다리는 몇 년 뒤 호전됐지만 그는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고 했다. "하나원(탈북자 적응교육시설)을 나와 배정받은 집이 아파트 6층이었는데, 여기서 뛰어내리면 죽을 수도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할 만큼 절망적이었어요."
하지만 김씨는 주위 사람들의 소개로 2004년부터 다니기 시작한 셋넷학교에서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탈북 청소년들이 모여 있는 그 곳에서 김씨는 영어 수학 국어 등의 교과과목은 물론이고 뮤지컬 공연, 문화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조금씩 남과 경쟁하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익숙해져 갔다. 그러는 동안 김씨는 어느덧 고통을 청춘의 보약으로 여길 줄 알 만큼 성숙해졌고, 마음의 병이 치료되면서 기적처럼 다리도 신경을 회복했다.
"지금은 탈북자라는 것이 오히려 '특권'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요. 남한에서 자라서 남한친구들처럼 자랐으면 결코 경험하지 못했을 고통을 경험한 덕에 그만큼 제가 더 단단해졌잖아요."
2005년 성균관대에 진학한 김씨는 올 초 이 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최근에는 항공 승무원이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질주 중이다. 처음 태국에서 비행기로 인천에 도착하던 날 멀미로 고통스러워 하던 김씨를 보살펴주던 승무원의 친절을 잊을 수 없어서다.'김하늘'이라는 이름 역시 스튜어디스의 꿈을 이루기 위해 김씨가 고르고 고른 가명이다. 김씨는 "걱정해주는 분들이 주위에 적지 않지만 그럴 수록 의지가 더 강해진다"고 했다.
"승무원은 단지 희망진로가 아니에요. 그걸 해낸다면 그야말로 사선(死線)을 넘으면서까지 희망했던 꿈을 이루는 거예요. 꼭 넓은 세상을 보고야 말겠다는 그 꿈이요. 탈북자도 할 수 있다는 것, 꼭 보여줄 거예요."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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