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이 '펀드런(펀드 대량환매)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모처럼 도달한 주가 1,700선이 오히려 펀드런의 도화선이 되면서, 이 펀드런이 다시 주가상승의 발목을 잡는 형국이다. 이쯤 되니 '축복의 1,700'이 아니라 '마(魔)의 1,700'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7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들어 국내 주식형펀드(상장지수펀드 제외)에선 하루 5,000억안팎의 뭉칫돈이 나가며 1조4,000억원 넘는 자금이 빠져나갔다. 코스피지수가 1,720대에 안착했던 지난 2일 하루에만 5,003억원, 5일 5,307억원이 순유출됐고, 6일에도 2,213억원이나 빠졌다. 지난달부터 주식형펀드에서 하루 평균 1,000억원안팎으로 꾸준히 자금이 이탈하고 있었지만, 2개월 여만에 코스피지수 1,720포인트대에 복귀한 것이 오히려 대량환매 사태에 불을 지핀 셈이다.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의 대량환매 심리가 당분간 잦아들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이번 펀드환매는 주가가 상승하다 1일 이후 코스피지수 1,720대(1,719.12~1726.60)에 갇혀 있자, 1,700대 이상에서 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들이 원금이라도 건지자며 빠져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스피지수가 1,700대를 넘어 2,000포인트벽을 뚫은 2007년6월~2008년1월 주식형펀드에 무려 25조원이 들어갔다. 당시 펀드 가입자들은 2008년말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주가 반토막의 뼈아픈 시절을 견뎌냈는데, 3년이 지나서야 이제 겨우 원금을 회복하자 미련 없이 펀드에서 손을 털고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2007년 이후 코스피 1,700대 이상에서 펀드에 순유입돼 아직까지 남아있는 자금이 약 24조원에 달한다. 언제라도 이탈할 수 있는 일종의 '펀드런 대기자금'이 이렇게 많다는 얘기다.
삼성자산운용 양정원 주식운용총괄(상무)은 "코스피지수가 작년 9월과 올 1월에 이어 세번째 1,720포인트에 도달했지만, 앞서의 학습효과 때문인지 펀드투자자들이 추가 상승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해 원금을 회복하는 수준에서 환매에 나서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대증권 이상원 투자전략팀장도 "주가가 현재 수준에서 한 단계 올라가 1,700대를 확실히 뚫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한다면 펀드에서 자금유출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8~9월에 4조원, 작년12월~올1월에 2조5,000억원씩 펀드에서 빠졌다가 주가가 조정국면에 접어들면 다시 자금이 들어온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이번 펀드런으로 인해 국내 증시가 폭락할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 하지만 환매 심리를 가라앉히기에도 불리한 상황이 됐다. 주가가 확실하게 오르든 아니면 또 다시 하락 조정국면에 들어가든 어쨌든 정체 국면을 벗어나야 주식형 펀드로도 자금이 들어가기 시작할 텐데,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매수세와 펀드환매로 인한 기관 매도세가 팽팽한 힘의 균형을 이루며 좀처럼 주가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HMC투자증권 김중원 책임연구원은 "외국인이 주식 반등을 주도하고 있지만, 주식형펀드 자금 감소의 여파로 국내 기관이 막대한 매도세를 지속하고 있어 1,800선을 향한 주가 상승에 장벽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증권 이 팀장은 "지금의 펀드 환매는 1,700포인트대가 고점이라는 판단 하에 차익 실현과 원금 보전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인 만큼, 주가에 큰 충격을 줄 정도까지 심화하지는 않겠지만 주가 상승에는 제동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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