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아, 나 알지? 한 달 동안 잘 해보자."
5일 오전 7시 50분, 서울 휘경동 휘경여고 1학년 6반 교실. 밴쿠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금메달리스트 이상화가 교탁에 섰다. 아주 잠깐 조용해지는 듯하던 교실은 이상화가 털털한 성격 그대로 격의 없이 첫 인사를 건네자마자 '꺅'하는 환호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너무 예뻐요" "사랑해요"…. 너나없이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어 대기도 했다. 이혜영 담임교사가 아침 영어듣기 방송에 지장을 줄까봐 "쉿!"하며 검지 손가락을 입에 댔으나 통제불능. 이 교사도 졌다는 표정으로 소요를 잠시 허락하는 듯했다. '동계올림픽 영웅' 교생 선생님이 그 역시 신기한 모양이었다.
한국체육대 4학년인 이상화는 이날 모교인 휘경여고에서 체육 교생 선생님으로 교육실습을 시작했다. 그는 진한 감색 자켓에 검정 치마 정장을 말끔히 차려 입고 1976년부터 이 학교에 재직해온 아버지 이우근(53ㆍ관리과장)씨와 함께 첫 출근했다. 아버지가 "수업 참관록은 쓸 줄 알아?"라며 걱정스레 묻자 딸은 "이미 학교에서 다 배웠으니 걱정 마세요"라며 웃었다. 가정형편이 넉넉지 못했던 이상화는 고3때 선수 생활 이후 진로를 고민한 끝에 실업팀 진출대신 교사나 지도자의 길을 염두에 두고 교직과정을 밟을 수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고 했다.
드디어 첫 수업. 긴장하고 떨릴 만도 한데 큰 경기를 많이 경험한 덕인지 여유가 넘쳤다. 스트레칭을 하며 양 다리를 일자로 쭉 뻗자 '와'하는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그러나 몸이 덜 풀렸는지 실수 연발. 줄넘기 이단뛰기 5회를 자신했건만 두세 차례 뛰어 넘다 걸렸다. 한 학생이 보란 듯이 순식간에 10번을 넘자 무안한 듯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웃었고, 학생들도 폭소를 터뜨렸다. "첫 수업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세계 정상의 스타가 된 제자를 예비교사로 맞은 은사의 감회도 남다른 듯했다. 2006년 고3때 담임이었던 최혜경 교사는 4년 전 이상화와 나눴던 대화 한 토막을 소개했다. 토리노 동계올림픽 500m에서 4위로 아쉽게 메달을 놓친 이상화가 4년 뒤 꼭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고 나타나겠다며 약속했다는 것이다. "꿈을 이룬 제자가 저와 같은 길을 걷겠다니 대견해요. 세계 정상급 스케이팅 기술만큼 따뜻한 애정과 열정으로 학생을 보살피는 너그러운 지도자가 될 거예요."은사의 부담스러운 격려에 이상화는 "수업은 즐겁게 하겠지만, 교사로서의 책임은 다 할 게요"라고 화답했다.
한편 이날 모태범 이승훈도 각각 덕소고와 한국체고에서 교생실습을 시작했다. 이들은 4주간 행정업무 연수, 수업참관 및 실습 등을 통해 교사로서 업무를 익힌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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