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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변시지, 제주여행의 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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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변시지, 제주여행의 1번지

입력
2010.04.09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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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변시지(邊時志) 화백은 여전히 건강하셨다. 전에 뵐 때보다 얼굴은 더 맑아보였다. 언젠가 그곳 이중섭미술관에 들렀을 때 이런저런 이유로 실망하고 돌아서다 단숨에 나를 빨아들이는 듯한 그림 한 점을 보았다. 제주바다를 누렇게 그린 선생의 작품이었다. 그림 앞에서 가슴이 뛰기는 처음이었다.

미술관 직원에게 그림의 화가를 물었고, 서귀포 기당미술관으로 달려가 선생의 대작들과 만났다. 그건 폭풍이었다. 내 영혼을 모조리 휩쓸고 가는 검고 누런, 거대한 폭풍이었다. 그때부터 변시지 화백의 작품은 내 제주여행의 1번지가 되었다. 제주를 선생의 그림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으로 구분했다.

선생은 식민지시대 제주에서 태어나 여섯 살에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갔다 1975년, 마흔아홉 살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서귀포 사람이 되어 고향 제주를 그리기 시작한 지 35년째, 선생은 여든넷의 연치에 여전히 붓을 놓지 않는 현역 화가다.

그 세월 동안 선생은 변방의 고독한 화가에서 미국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생존하는 작가로 자신의 작품을 건 동양인 최초의 화가가 되었다. 선생의 주론(酒論)은 술은 없어질 때까지 마시는 것이다. 오랜만에 선생을 모시고 즐겁게 취했다. 밤늦게 댁에 모셔다 드리며 선생의 화실을 살짝 훔쳐보았다. 그곳은 아틀리에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제주바다였다.

정일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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