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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도 몰랐겠지! 저 바다가 옛사랑이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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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도 몰랐겠지! 저 바다가 옛사랑이 될 줄은…

입력
2010.04.09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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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에 갇힌… 김제 심포항

33km의 바닷길 드라이브. 땅 위로 달렸으면 별것 아닌 거리인 것을 바다 위로 달려서인지 멀미가 나는 듯 머리가 조금 어지럽다. 새만금방조제를 달리고 난 뒤 방향을 잡은 곳은 전북 김제의 심포항이다.

끝없이 펼쳐진 김제 만경의 너른 들을 가로질렀다. 들판은 광활했다. 오죽했으면 김제의 가장 넓은 이 들녘의 행정명이 광활면인가. 지평선의 끝자락 바닷가에 다리미질에 밀려 올라간 옷감의 끝자락 같은 나지막한 봉우리가 나타난다. 산이라기 보다 작은 언덕이라 부르는 게 적당한 해발 72m의 진봉산이다.

산자락 바로 밑, 김제 평야가 바다와 만나는 꼭지점에 심포항이 있다. 김제 땅에서 그나마 바닷가 구실을 해왔던 곳이다. 심포가 아닌 금포로 불릴만큼 갯벌에서 엄청나게 백합을 잡아들여 흥청거렸던 포구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이라 각종 물고기들로 항상 넉넉했던 포구다. 하지만 지금 심포는 바다를 잃었고 그 좋은 어장과 황금개펄을 잃었다. 새만금방조제가 가둔 바다가 예전 바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전히 포구엔 고깃배들이 정박해있고, 거리엔 백합 좌판이 늘어서 있다. 하지만 흥청거렸던 예전의 분위기가 아니다. 이전의 심포를 그리며 찾아온 이들이 두리번거리고 이들을 상대로 호객을 하는 좌판의 상인들이 있지만 그리 신이나 보이지 않는다.

바다엔 갈대군락이 성큼 내려앉았다. 푸석해진 뻘 바닥엔 쓰레기 더미가 쌓여가고 있다. 지금 심포항 앞 바다는 거대한 담수호가 돼가고 있다. 아직은 방조제 틈바구니로 바닷물이 스며들어 오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분명한 건 바다가 막혔다는 것.

심포항의 우울을 달랠 요량으로 인근의 망해사를 찾았다. 진봉산 자락 한귀퉁이에 서있는 사찰이다.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과 학승이 기거한다는 낙서전, 요사채로 보이는 청조헌과 산신각 범종각 등이 있는 작은 절집이다. 바닷가에 굵게 뿌리 내리고 있는 팽나무 몇 그루 위엄을 드리우고 있다.

이 절에서 오래된 건물은 낙서전이다. 1589년 진묵스님이 처음 지은 것을 1933년, 1977년 고쳐지었다고 적혀있다. 절 앞마당에는 땅밑으로 돌아 내려가는 돌계단이 있다. 지하의 우물로 안내하는 길이다.

절은 작지만 절의 뜨락은 무량하다. 망해사 앞 무망한 갯벌, 바다가 모두 앞마당이다. 계곡 물소리 들리는 숲 속의 절들이야 널렸지만 앞마당에 바다를 펼치고 있는 절들은 그리 많지 않다. 사찰 건물 중 청조헌(聽潮軒)이란 편액이 눈에 들어왔다. 물결의 소리를 듣는 곳이다. 밀물과 썰물의 흐름을 듣고 선 망해사에 딱 어울리는 이름이다.

바닷가 한쪽에 세워진 해우소가 걸작이다. 재래식 화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 쪼그려 앉으면 눈높이에 미닫이 창이 달려있다. 드르륵 그 작은 창을 열면 바다가 한걸음에 다가온다. 시원한 바다 풍경에 취해 해우소에 들어온 이유를 잊어버릴 듯하다. 낙서전 앞 두 그루의 팽나무는 400년 가량 된 노거수다. 굳이 나이테를 끄집어내지 않아도 격하게 뒤틀린 둥치가 그 세월을 이야기 한다.

바다를 바라보는 망해사가 이제 바다를 그리워하고 있다. 사실 지금 눈 앞의 바다도 진짜 바다는 아니다. 방조제에 둘러싸인 단절된 바다다. 망해사의 슬픈 바다다.

청조헌 앞에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모든 설움을 태울 붉은 노을이 깃들길 기다렸다. 경내에 드리웠던 팽나무 그림자 길게 늘어지다 마침내 지워질 때, 서편 하늘의 붉은 태양도 함께 스러졌다. 멀어, 그 윤곽을 또렷이 볼 수 없지만 망해사의 태양이 넘어간 곳은 바다가 아닌 방조제였을 것이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향수 자극… 현재 속의 과거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

군산에 가면 빛 바랜 흑백사진의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다. 개발의 소용돌이 속 우리의 근ㆍ현대 과거들이 막무가내로 사라져버렸다. 다행히 군산에 그 기억들이 온전히 남아있어 과거를 좇는 이들을 껴안고 있다.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몰려드는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도 그 중 하나다. 어릴 적 들었던 '기찻길옆 오막살이'동요와 딱 어울리는 마을이다. 이마트 앞 대로변 바로 뒤에 붙어있다. 철길마을로 들어서면 잊혀졌던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이동하는 느낌이다. 철로에 다닥다닥 붙은 허름한 집들의 풍경이 가슴에 싸한 찬 기운을 불어 넣는다.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 녹슨 철길. 그곳에 우리네 또 다른 이웃이 둥지를 틀고 있다. 나그네는 기찻길 옆 오막살이의 향수를 느끼러 오지만 정작 그곳에서 사는 그들에겐 삶의 현장일 뿐이다. 여름이면 채송화가 작은 화단에 곱게 피어나고, 각종 화분으로 예쁜 정원을 꾸미고 사는 곳이다.

창문 밖으로 달그락 설거지 소리, 지지직 TV 채널 돌아가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기찻길 옆 아이를 깨울 수 없어 정말 조심조심 발 끝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걸었다. 함부로 카메라를 들이대며 그들 일상을 조준하는 게 민망하다. 그들의 삶에 대한 모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발걸음이 그들의 쉼을 깨트릴까 또 조심스럽다.

이 철길마을은 일제 때 조성됐다. 원래 갯벌이던 땅에 일제가 간척사업을 벌여 방직공장을 만들려 했다. 그리곤 군산역에서 방직공장 부지까지 2.5km 구간에 철길을 놓았다. 그 방직공장 터에 북선제지가 들어섰고 해방 이후에도 고려제제, 세풍제지 등 종이회사가 차례로 공장을 차지했다. 종이회사의 원자재를 실어 나르던 철도라 '제지선' 또는 '종이철도'로 불렸다. 열차는 2008년 6월까지도 하루 2번은 다니다가 지금은 완전히 중단됐다.

군산은 개항 도시다. 1899년 일제에 의해 억지로 문을 연 개항장이다. 군산엔 당시의 유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군산항을 통해 일제는 전북 곡창지대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날랐다. 당시 약탈의 중심지였던 해망로 인근의 근대문화유산 중 보존이 가장 잘 된 곳은 구 군산세관 건물이다. 90년대까지 실제 세관 건물로 사용됐으나 현재는 군산의 100년 역사를 알려주는 사진들과 물품들이 전시돼 있다.

해망로와 맞닿은 군산 내항에는 당시 3,000톤급 기선을 6척이나 댈 수 있었던 뜬다리부두(수면의 높이에 따라 위아래로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한 다리 모양의 구조물)가 남아있다. 수백만 섬의 쌀을 실어 나르던 곳이다.

옛 히로쓰가옥은 일제시대 포목상이었던 히로쓰가 건축한 정통 일본식 저택이다.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야쿠자 두목 하야시의 집으로도 등장했고, 영화 타짜에서 주인공 고니(조승우역)가 스승 평경장(백윤식역)으로부터 화투 교육을 받던 장면의 배경으로 쓰였다.

일본식 사찰 건물인 동국사는 조용한 주택가에 들어앉았다. 건물을 감싼 무성한 대나무숲이 인상적인 곳이다. 당시는 금강사라 했다가 한국의 불교가 인수하면서 동국사란 이름을 얻게 됐다. 복도를 통해 법당과 화장실 목욕탕 등으로 모두가 이어지는 일본 건축의 특성을 엿볼 수 있다.

개정동 군산간호대학에 있는 이영춘 가옥은 일제시대 최대 농장주였던 구마모토 리헤이의 집이었다. 그는 고리대금업으로 땅을 그러모아, 한 때 여의도 면적의 10배가 넘는 땅을 소유했었다.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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