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의 디스플레이' AMOLED… 삼성, 세계시장 98% 석권
“(초고배율 전자현미경을 들여다 보면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선 각 회로 패턴 사이의 간격을 좀더 좁히는 게 유리할 것 같은데요.”
“제품 특성과 공정 조건을 체크해 보고, 적용해 보도록 해보죠. 4마이크로(머리카락 1/25크기)로 설계해 보겠습니다.”
고성능 컴퓨터(PC)를 포함해 최첨단 장비들로 꾸며진 충남 천안의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종합 분석실.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를 전자현미경과 PC 모니터로 번갈아 관찰하면서 나누는 이 업체 OLED 제품개발팀의 김태곤(37), 박순룡(36) 책임연구원들의 대화는 진지하기만 했다.
“살아있는 아이들이거든요. 아주 예민하고 민감합니다. 그래서 가능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죽어 버리거든요(웃음). 저희가 맡은 임무는 이 친구들의 수명을 최대한 연장시키는 겁니다.” 박 연구원은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주목 받으며 자체 발광 기능을 가진 AMOLED를 살아 있는 생명체에 비유했다. AMOLED는 평면 화면 뒤에서 별도 광원의 도움으로 동영상을 재생하는 액정화면(LCD)이나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PDP)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설명이었다.
“얘들하고 울고 웃으며 함께 지낸 시간이 벌써 5년이 흘렀네요(박 연구원). 세월이 벌써 그 만큼이나 흘러 갔더라고요. 그 때는 참, 힘들었었는데….(김 연구원)” AMOLED의 탄생기를 묻는 질문에, 두 연구원은 시선을 허공으로 돌리며 그렇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갔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가시밭길을 가다
AMOLED의 본격적인 태동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11월17일, 삼성은 4,600억원을 들여 충남 천안에 세계 최초의 4세대 AMOLED 전용 라인 구축을 선언하며 세계 디스플레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AMOLED를 신수종사업으로 정한 삼성그룹은 2008년9월 삼성SDI에서 모바일 디스플레이(LCD 및 OLED) 사업 부문을 떼어내고, 2009년1월엔 삼성전자 기흥공장(2라인)과 천안공장(3,4라인)에서 각각 제조설비와 인력 등을 흡수했다. 지난해 초 설립한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의 신호탄은 이미 그 때 쏘아진 셈이었다.
“AMOLED의 장점이야 많죠. 쓰임새도 무궁무진하고요. 문제는 기술적으로 탁월한 우수함을 갖추고 있지만, 넘어야 할 산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오죽했으면, AMOLED 사업팀이 당시 내건 슬로건도 ‘양산성공ㆍ신화창조’였다니까요.” 김 연구원의 설명대로, LCD에 비해 AMOLED는 수분과 공기에 취약한데다 제조공정이 까다로워서 수익성을 맞추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수분과 공기에 취약한 AMOLED를 외부와 차단하기 위한 봉지기술에서부터 AMOLED를 유리에 증착하는 기술과 초고해상도 화질을 위한 설계 최적화 등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만만한 게 없어 보였다. 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기업들이 AMOLED의 장점을 높이 사면서도 막상 투자를 꺼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무엇보다 선행기술이 없다는 점은 가장 큰 걸림돌로 다가왔다. “연구원들이 머리 맞대고 수 없이 밤샘 회의를 가진 다음, 직접 라인에서 (제품 생산)을 돌려보면 안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습니다. 이 분야에서 시도되는 것은 뭐든 세계 최초이다 보니 누구한테 물어볼 사람도 없었고….”(박 연구원) “아마 ‘최종’이란 명목을 달고 가진 회의가 TV나 휴대폰 등을 포함한 각각의 신제품 프로젝트에서 기본적으로 30번씩은 넘게 진행했을 겁니다.”(김 연구원) 엷은 미소를 머금고 두 연구원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신화’ 창조는 시작됐다
이들에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결승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07년12월. 업계에선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31인치 AMOLED 패널 개발에 성공하면서 ‘AMOLED의 대형화는 어렵다’는 선입견을 완전히 깼다.
“정확하게 계산해 보진 못했지만, 아마 반년 이상은 철야작업을 진행했던 것 같아요.” 2년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박 연구원의 머리 속엔 그 때의 감동이 아직까지 생생한 듯 했다. 소형이 아닌 대형 AMOLED에서도 100% 색재현율 구현이 가능하다는 점을 대내외에 확고하게 각인 시켰던 것이다.
물꼬는 계속해서 터졌다. 불과 10개월 뒤인 2008년 10월엔 40인치까지 크기를 넓히고도 총 두께가 8.9㎜에 불과한 AMOLED 패널을 양산에 성공했다.
호평도 쏟아졌다. 그 해 10월 일본에서 열린 평판패널디스플레이(FPD) 인터내셔널 전시회에서 공개된 31, 40인치 AMOLED 패널엔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고 제품 주문과 찬사가 이어졌다.
관련 업계의 반응도 달라졌다. 2009년 1월 문을 연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가 AMOLED의 제품 개발을 위해 상생협력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회사 출범과 함께 시행한 ‘크레파스’에는 많은 협력사들이 몰렸다. 탄력 받은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는 지난해 6월 출시돼 국내 시장에 ‘보는 휴대폰 시대’를 열었던 ‘아몰레드’폰에 고해상도의 AMOLED를 탑재시켰다.
시장 전망도 밝다. 시장조사기관인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2009년 2,226만대에 그쳤던 세계 AMOLED 시장 규모는 2011년엔 7,595만대, 2013년엔 1억2,614만대로 예상되며, 2015년에는 1억9,432만대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연간 3,500만대 규모의 AMOLED를 제조ㆍ판매하는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98% 이상으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을 반영이라도 하듯,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연구실에선 여전히 차세대 제품 몰두에 여념이 없다. “새 생명(AMOLED)을 탄생시켰으니, 다시 또 생명 연장의 꿈을 이뤄가야죠.” 두 연구원들은 AMOLED의 성능 향상 실험을 위해 다시, 초고배율 전자현미경과 고성능 PC로 눈길을 옮겨갔다.
천안=허재경 기자 ricky@hk.co.kr
■ '꿈의 디스플레이' AMOLED 특성은
AMOLED는 동영상 재생을 위해 별도의 광원이 필요한 LCD 및 PDP와는 달리, 자체에서 빛을 내는 특성을 갖고 있다. LCD에 비해 동영상 응답속도가 1,000배 이상 빠른데다, 색상과 선명도가 월등해 ‘꿈의 디스플레이’로도 불린다.
특히, 자체 발광 특성 덕분에 별도 광원이 필요한 LCD와 PCD에 비해 디스플레이를 더 얇게 만들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이 때문에 AMOLED는 최근 MP3플레이어 및 동영상 구현, 지상파 멀티미디어방송(DMB) 등 다양한 멀티미디어 기능이 첨가되면서 두꺼워지고 있는 휴대폰의 소재로 많은 각광을 받고 있다.
AMOLED는 또 시야에 따른 변화 없이, 어떤 각도에서든 선명한 이미지 표현이 가능하다. 액정 고유의 특성으로 상하좌우에서 특정 각도 이상으로 벗어날 경우, 화면이 잘 보이지 않는 LCD와 다른 차이점이다.
여기에 온도에 따른 변화가 없어, 속도감 있는 영상표현도 자연스럽게 보여주면서 장시간 시청해도 눈의 피로감을 덜어준다는 점도 AMOLED의 특징이다. 또한 영하 10도 이하에서나 영상 40도 이상에서 액정의 점도(粘度) 변화로 동영상 재생시 화면이 느려지는 등 오작동이 발생할 수 있지만 AMOLED는 극저온과 고온에서도 응답속도에 변화가 없다는 특성도 보유하고 있다.
아울러, AMOLED는 ‘저탄소 녹색성장’ 시대에 맞는 최적의 디스플레이란 평가도 받고 있다. 한편의 영화를 관람한다고 했을 때, AMOLED의 소비전력은 LCD의 17% 수준에 불과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폐기물량에서도 2인치 2,000만개를 기준으로 AMOLED는 50톤에 머물고 있는 반면, LCD는 250톤에 달한다.
이 같은 특성으로 인해 휴대폰을 포함해 각종 디지털기기들이 콘텐츠 중심으로 변해가면서 AMOLED의 활용폭은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3차원(3D)과 멀티미디어 등 모바일용 콘텐츠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휴대용 디지털기기에서도 PC와 유사하게 인터넷 사용환경을 제공하는 풀브라우징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AMOLED에겐 호재다. 업계에선 2009년 2.3%에 머물렀던 AMOLED의 휴대폰 채용률이 2015년엔 40%까지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같은 기간 동안 디지털카메라의 경우엔 0.6%에서 17%로, 게임기에선 0%에서 25%까지 AMOLED의 채용률이 각각 늘어날 전망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저전력에 초슬림 디자인 구현이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향후 AMOLED는 초박형 TV와 휘고 접히는 모니터, 투명 내비게이션 등 우리 생활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차세대 제품에 널리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허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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