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종 릴레이로 지친 엄마 '만능백신'을 기다립니다
기자 아닌 주부로서 매월 초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달력과 다이어리를 펼쳐 놓고 가사나 육아 관련된 그 달 일정을 확인하는 것. 취재와 마감 같은 업무 일정과 머릿속에서 뒤섞이다 보면 자칫 깜빡 할 수 있기에 꼼꼼히 적어둬야 한다. 이달 달력엔 17일에 동그라미를 치고 이렇게 썼다. '일본뇌염 예방접종 3차'.
국가표준 예방접종 일정표를 찾아보고 이번만 맞추면 만4세까지는 접종이 없다는 걸 확인한 순간, 오래 묵힌 숙제를 내 손으로 끝낸 듯한 안도감과 뿌듯함이 스쳤다. 초보 엄마, 특히 워킹맘에게 두 돌 전후까지 한 달이 멀다 하고 찾아오는 예방접종 일정은 좀 번거롭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욕심 같아선 주사 한 두 방에 웬만한 병 싹 다 예방해주는 '만능백신' 같은 게 나오면 좋겠는데 싶다.
사실 이런 바람이 무리는 아니다. 이미 3가지 병을 겨냥한 백신도 있으니까 말이다. 생후 2개월부터 맞는 백신 DTaP는 디프테리아와 파상풍 백일해를 동시에 예방한다. 독성을 약화시킨 이들 3가지 세균을 한번에 몸 속에 넣어 면역체계를 적응시키는 방식이다.
이미 개발된 백신을 서로 섞는 게 무에 어렵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리 간단치 않다. 서로 다른 두 백신을 혼합하면 따로 사용할 때보다 효과가 줄어들 수 있다. 몸의 면역체계가 여러 개의 항원(세균)에 대해 동시다발적으로 작동해야 하니 힘이 분산되는 것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DTaP에선 반대로 면역작용이 상승한다. 셋 중 한 가지(백일해) 백신이 나머지 두 가지의 효능을 높여주기 때문이라는 게 과학자들의 설명이다. 이를 '애주번트(항원보강) 효과'라고 부른다. DTaP에선 백신 중 한 성분이 자체적으로 애주번트 효과를 내지만 보통 다른 백신에선 화학물질로 이뤄진 항원보강제를 사용하기도 한다. 가능한 많은 백신에서 면역증강 효능을 높이는 보편적인 항원보강제를 개발하는 게 제약회사들의 중요한 연구전략이기도 하다.
김동욱 국제백신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접종 일정이나 성분 등을 따져봤을 때 혼합 백신으로 이미 효과가 입증된 DTaP에 B형간염과 뇌수막염의 2가지를 더 섞는 5가 백신 개발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설명했다. 홍역과 볼거리 풍진 백신인 MMR에 수두 백신을 혼합한 4가 백신은 이미 개발돼 있다.
최근 이런 다가(多價) 혼합 백신이 실제로 일상생활에 널리 쓰이기까지 10년 정도 걸릴 거라는 예측이 나왔다. 앞으로 강산이 한 번 변하면 엄마들의 수고로움도 좀 덜해지려나.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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