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천하의 형세를 돌이켜볼 때, 그 두려운 바는 항상 몽골에 있고 다른 오랑캐에 있지 않다. 그것은 무슨 까닭일까. 몽골의 강하고 사나움은 티베트나 회회국만은 못하나, 전장과 문물이 가히 중원과 서로 대항할 만하기 때문이다."(박지원 '열하일기 에서)
명나라가 여진에 멸망한 후 조선의 지식인들은 천하에 문명국은 조선밖에 없다는 '소중화' 의식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몽골도 오랑캐의 나라로 취급했으며 몽골에 대한 관심 자체도 그다지 높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그간 우리 학계의 통념이었다.
그러나 몽골 고대사를 전공한 박원길(52) 한국몽골학회 부회장은 <조선과 몽골> (소나무 발행)에서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연행록 70여 편을 분석, 예상 외로 심도깊은 몽골 관련 기록이 남아있음에 주목했다. 그는 연행 경험이 있는 18세기의 조선 지식인 박지원(1737~1805)의 '열하일기', 서호수(1736~1799)의 '연행기', 최덕중(?~?)의 '연행록'을 집중 분석했다. 조선과>
지은이가 주목하는 인물은 서호수다. 서유구의 아버지로 천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서호수는 정조의 신임을 받아 규장각에서 각종 편찬사업을 주관한 인물. 그는 '연행기'에서 몽골의 지리, 역사, 부족, 습속, 종교 등 각종 정보를 세밀하게 남겼는데 이 기록들은 청나라에서 몽골의 지리를 처음으로 다룬 장목(1805~1849)의 '몽골유목기'나 1910~20년대 일본 학자들의 초기 몽골 보고서에 뒤지지 않는 수준이라는 것이 저자의 평가다. 저자는 특히 서호수가 조선 지식인들이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원 세조 쿠빌라이 칸의 이민족 포용정책을 긍정하면서, 조선 사대부들의 소중화 의식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
이 밖에도 서호수, 최덕중 등이 청나라의 성격을 만ㆍ몽 연합정권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 군사전문가인 최덕중이 청을 견제하기 위해 조ㆍ몽 연합의 필요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도 밝혔다.
저자는 "뛰어난 천문학자이기도 했던 서호수는 몽골족이 지배했던 원나라의 과학기술 발전의 의미를 꿰뚫어보고 있었으며 몽골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며 "서호수는 몽골이라는 사상적 통로를 통해 조선의 주자학적 시대이념의 모순을 발견한 '시대의 말없는 배반자'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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