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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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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한식

입력
2010.04.09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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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춘추시대 5대 패자(覇者)의 하나인 진(晉) 문공(文公)이 후계다툼에 휘말려 추방돼 떠돌 때 그를 따르던 가신 중에 개자추(介子推)가 있었다. 허기에 지친 주군에게 허벅지를 도려내어 고깃국을 끓여 바쳤다는 '할고담군(割股啖君)'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문공이 보위에 오른 후 논공행상에서 빠진 그는 귀향해 노모와 함께 면산(綿山)에 은거했다. 잇따른 종용에도 그가 나오지 않자 문공은 산에 불을 놓도록 했다. 노모와 함께 산을 내려오리라는 기대와 달리 개자추는 버드나무 아래 노모를 안고 타 죽은 모습으로 발견됐다. 문공은 매년 이날 크게 제사를 지내 그의 넋을 달래도록 했으나 불은 피우지 못하게 했다.

■ 어려서는 벼슬을 받지 못한 개자추의 속상함을 떠올렸다. 철 들고는 옛사람들이 그리 속된 이야기를 전할 리 없다고 생각을 바꾸었다. 개자추의 은거는 자신을 잊은 주군에 대한 원망보다는 공을 다투느라 여념 없는 다른 가신들에 대한 실망, 주군이 보위에 올랐으니 소임이 끝났다는 뜻이어야 했다. 이름만 남은 주(周) 왕실 대신 실권을 장악한 패자라면 당연히 법제 정비 권한을 가졌을 것이고, 고대 중국정치에서 제사가 중요한 정치 행위였다는 점에서 한식 날의 유래로서도 충분했다.

■ 유래는 그렇지만 전통이 강했던 시골에서도 실제로 한식 날 찬밥을 먹은 기억은 없다. 여름에는 찬밥을 즐겨 먹고, 일부러 찬물에 말아 먹기도 했지만 조석으로 쌀쌀한 이 무렵에는 죽이라도 따뜻한 것이 나았다. 다만 조상의 묘를 찾아 제사를 지내는 것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지키고 있다. 서릿발에 뿌리가 들뜬 보리를 밟아 가문 봄을 견디게 하듯, 얼음 풀린 산소의 잔디도 밟아줄 필요가 있다.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동시에 지금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지성(至誠)과 청렴을 되새길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 한식은 24절기의 하나인 청명 다음날이거나 겹친다. 이 때문에 청명 풍습과 한식 풍습을 가리기 어렵다. <동국세시기> 가 새로 일으킨 불을 임금이 백성에게 내리는 '사화(賜火)'를 청명조에 실었지만 <열양세시기> 는 한식조에 싣는 등 오래 전부터 헷갈렸다. 버드나무 가지를 머리에 꽂는 중국의 '삽유(揷柳)'풍습도 개자추의 죽음과 이으면 한식 풍습이지만, 봄이면 재빨리 물이 오르는 버드나무의 특성을 생각하면 청명 풍습이다.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매한가지'라는 속담대로 굳이 구별할 것 없이 식목일까지 합쳐서 능동적 봄맞이 날로 삼으면 그만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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