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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광고 천재 이제석' 아하! 뒤통수 때리는 착한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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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광고 천재 이제석' 아하! 뒤통수 때리는 착한 광고

입력
2010.04.05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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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석 지음/학고재 발행ㆍ216쪽ㆍ1만5,000원

광고쟁이는 광고주에게 뜯어낸 돈으로 그럴싸한 광고를 만들어 소비자를 홀릴 궁리만 하는 사람이다? 상업광고 알레르기 환자뿐 아니라 광고쟁이 자신도 그런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일본에서 최고로 잘나가는 광고인이 "광고는 거짓말이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고층빌딩에서 뛰어내린 사건이 있었다. 세계 3대 광고제의 하나인 '원쇼 페스티벌' 최우수상을 비롯해 국제적인 광고 공모전에서 무려 29개의 메달을 싹쓸이하며 '광고 천재'로 유명해진 이제석(29)씨도 '뻥쟁이'가 되기 싫어서, '사기를 치더라도 좋은 사기를 치고 싶어서' 보통 광고쟁이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청년이다.

<광고 천재 이제석> 에서 그는 자신의 광고철학, 아이디어 발상법, 2년 간의 살벌하고 치열했던 뉴욕 생활을 털어놓았다. 속어를 섞어가며 거침없이, 에두르지 않고 팍팍 써내려간 글이 통쾌하면서도 진지하다.

한국에서 그는 루저였다. 과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지방대 출신이라고 찬밥 신세인 게 분해서 이를 박박 갈다가 세계 최고 광고쟁이들이 있는 곳에서 한판 붙어보자고 2006년 뉴욕으로 갔다. 편도 비행기표와 달랑 500달러를 든 채. 그렇게 배수진을 치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공부하고 일해 혁혁한 성과를 냈다. 세계 주요 광고제를 휩쓸었고 BBDO, FCB, 빅앤트 등 최고의 광고회사에서 일했다. 패기만만, 오기, 열정이 그의 엔진이었다.

여기까지는 루저의 인생역전 성공기다. 이 책의 진가는 그 다음이다. 어느 날 그는 회의에 빠졌다. 나는 왜 광고를 만드는가? 잘나가는 사람 더 잘나가게? 아니다. 착한 광고를 하고 싶다. 그래서 그는 길을 돌렸다. 광고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자고 결심했다. 전쟁, 기아, 환경 문제 등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뉴욕과 워싱턴 전봇대에 붙인 반전 포스터를 비롯해 많은 기발한 작품을 내놨다. 내친 김에 '광고로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작정하고 2009년 자기 이름으로 광고연구소를 차려 대한민국의 4대 악질 사회문제와 맞짱을 뜨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인 등골 빼먹는 집값, 차값, 대학 등록금, 결혼비용을 정면으로 겨눈 것이다.

그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광고판에 대해 아주 비판적이다. 광고는 돈으로 처바르는 '쩐의 전쟁'이라고 욕하면서, "돈밖에 모르는 광고판 날강도들이 돈을 벌게 해주기 싫다"고 말한다. 그런 그에게 한국 광고업계라고 곱게 보일 리가 없다. "한국 광고계는 아이디어 없는 거품 덩어리"이고 "소비자가 질릴 때까지 물량 공세를 퍼부어 세뇌하려고만 한다"고 비판한다. 거기에 합류하지 않으려고, 그는 광고를 사전 제작한다. 남들처럼 광고주가 주문하면 만드는 게 아니고, 자기가 원하는 광고를 만들어서 팔러 다닌다. 그런 '거꾸로' 행보로 그는 큰 돈 안 들이고도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광고, 정직하고 착한 상업광고, 못살고 힘없는 사람도 행복해지는 공익광고를 만들고 있다.

그의 발상법은 광고쟁이가 아니더라도 귀담아 들을 가치가 충분하다. '다르게 보라, 거꾸로 보라, 웃겨라'가 요체다. 그가 세상을 사는 방식도 비슷하다. "판이 불리하면 뒤집어라. 판이 더럽다고 욕하지 말고 새로 짜라. 룰을 바꿔라. 결승점을 바꾸면 꼴찌로 달리는 사람도 일등이 된다. 네 마음껏 살아라"며 뒤집기 한판승을 격려한다. 읽고 나면 기운이 날 것이다.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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