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 버는대로 R&D 투자… 세계가 그 빛을 인정했다
"티끌 만한 이 하얀색 칩이 회사의 앞날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힐 희망입니다."
지난달 30일 경기 안산시 원시동 반월공단 서울반도체에서 만난 이상민 부사장은 앙증맞게 생긴 발광다이오드(LED) 칩을 가리키며 환하게 웃었다.
LED 반도체 제조회사인 서울반도체는 지난해 매출 4,534억 원, 영업이익 440억 원으로 글로벌 경기 침체에서도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매출상승률도 역대 최대(60%)로, 17년 연속 매출 상승세를 이었다. 주식 시장에서는 가장 잘 나가는 '코스닥 대장주'로 손꼽힌다. 2006년과 2007년 포브스와 비즈니스위크는 서울반도체를 '아시아 최고 유망기업'으로 뽑기도 했다.
서울반도체의 급성장에 날개를 단 것은 LED이다. LED 시장은 해마다 30%가 넘는 성장률을 보이며 차세대 유망 시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지난해 270억 달러인 시장 규모는 2015년 1,000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서울반도체는 20년 가까이 쌓아 온 LED 패키징(가공, 포장)과 LED 칩 제조 기술력을 앞세워 녹색 성장 시대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초지일관, 승승장구
이정훈 사장이 봉천동에 위치한 '서울반도체'를 처음 찾은 것은 1992년. 이 회사는 87년 미국계 반도체 회사에서 일하던 엔지니어들이 세웠지만 경영이 어려워지자 새 주인을 찾고 있었던 것. 당시만 해도 LED에 대해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이 사장은 그러나 새로운 분야라는 매력과 LED가 미래에 통할 수 것이라는 직감에 회사를 과감히 인수했다. 기술력은 뛰어났지만 자금력 등의 문제로 꿈을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있던 이 회사는 이 사장이 인수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이 사장은 "영원히 LED 한 우물만 팔 것"이라고 다짐했고, 버는 돈의 10% 이상을 무조건 연구개발(R&D)에 쏟아 부었다. 덕분에 기술진은 걱정 없이 연구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90년대 중반 휴대폰 산업이 불 붙으면서 서울반도체는 쑥쑥 자랐다. 2000년에는 세계에서 처음 '백색 칩 LED'를 만들어 청ㆍ녹ㆍ황색 버튼만 있던 휴대폰에 흰색 버튼을 탄생시키는 밑거름을 만들었다.
이 사장은 2002년 LED 칩 제조 전문 회사 '서울옵토디바이스'를 차렸다. 외국 칩을 가져다 패키징만 해서는 성장에 한계가 올 것이며 알맹이(칩)를 만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같은 해 일본의 니치아화학공업이 장악하던 백색 사이드 뷰 LED(휴대폰 액정 옆면에서 빛을 내도록 하는 것)의 국산화에 성공한다.
호사다마, 전화위복
기쁨도 잠시. 곧바로 위기가 왔다. 독일, 일본, 미국 회사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서울반도체를 가만 두지 않았던 것. 특히 90년대 초 세계 최초로 파란색 LED 칩을 개발하는 등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니치아는 2005년 서울반도체를 상대로 미국, 일본 등에서 소송을 제기하며 거세게 밀어붙였다.
이 부사장은 "개발 할 때부터 특허 문제는 철저히 준비했지만 고객들은 믿지 않았다"며 "혹시 회사가 문 닫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있었지만 우리는 이겨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서울반도체는 니치아가 파란색 칩을 흰색 칩으로 만들 때 썼던 형광물질(YAG)이 아닌 독자 개발한 형광체를 써 특허 논란의 중심에서 비켜날 수 있었다.
니치아는 결국 "서울반도체와 특허를 공유한다"는 '크로스 라이센스'에 합의하며 한 발 물러섰다. 이 부사장은 "우리 기술력을 대수롭지 않게 봤던 니치아도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걸 인정한 셈"이라며 "50억 원 가까운 비용이 들었지만 소송을 통해 서울반도체의 기술력을 국제적으로 인정 받은 계기였다"고 말했다.
발목을 잡던 특허 소송이 마무리되자 전 세계에서 주문은 밀려들었다.
서울반도체는 5,000개가 넘는 LED 관련 특허와 라이선스를 확보하고 있는데 지금도 유력 회사들이 기술을 나누자며 '러브 콜'을 보내고 있다. 니치아를 포함해 독일 오스람, 일본 도요다고세이 등 LED '톱 5' 중 4개 회사와 특허 크로스 라이선스를 계약을 맺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백열 전구를 LED로 대체하고 LED조명이 '블루 오션'으로 떠오르면서 서울반도체가 2005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아크리치'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지금껏 LED는 저전압용이라 고전압(110V∼220V)에서 빛을 내려면 별도 장치(AC/DC 컨버터)가 필요했는데 이 장치의 수명이 LED의 수명보다 짧아 '오래 쓸 수 있다'는 LED의 장점을 살리지 못했다. 아크리치는 컨버터 없이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직접 교류 전원(콘센트)에 꽂으면 쓸 수 있어 '긴 수명, 높은 효율'이라는 LED의 장점을 맘껏 발휘할 수 있다.
미래 창조의 길은 오직 기술 개발뿐
서울반도체는 얼마 전 LED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이며 '일본의 에디슨'이라고 불리는 나카무라 슈지 미국 샌타바버라대 교수를 기술 자문으로 영입했다. 그는 1993년 세계에서 처음 파란색 LED 칩을 개발해 적색, 녹색만 가능했던 LED 색상을 파란색까지 넓히며 LED의 새 지평을 열었다.
이 부사장은 "패키징-칩 분야에 이은 제3의 경쟁력을 얻기 위해 바이오 분야 등에서 기술 개발이 한창"이라며 "나카무라 교수의 영입으로 기존 제품의 기술력을 높이는 동시에 3~4년 안에 상용화할 무극(Non-Polar) LED(기존 LED에 비해 밝기가 30~40% 좋은 제품) 개발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안산=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 LED 中企3 중고를 해결하라
최근 지식경제부가 주최한 발광다이오드(LED) 업계 간담회에서 LED 조명을 만드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LED 조명의 경쟁력은 LED 기술과 디자인을 아우르는 융합형 인재"라며 "전공 학과도 1,2곳 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렵게 키운 인재를 대기업들이 빼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같은 자리의 삼성 LED, LG이노텍의 대표들은 머쓱한 표정이었고, 최경환 지경부 장관은 "대기업은 이를 자제해 달라"며 당부했다.
현재 LED업계의 인력난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업계 관계자는 "LED가 뜨니까 너나 없이 뛰어들고 '일 할 만한' 사람이 모자라다 보니 '사람 빼 가기'가 치열하다"고 말했다. 자신의 회사에서도 10명 이상이 빠져나갔다는 이 관계자는 "화학, 물리학 등 전공자를 뽑아 3년 넘게 가르쳐야 혼자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다"며 "뒤늦게 뛰어든 대기업이 전방위로 인력빼가기에 나서고 있어 기술 인력 지키는 게 가장 큰 숙제"라고 안타까워했다.
정부는 2012년까지 5,000명 이상의 생산ㆍ연구 인력이 필요 하다고 보고, 재료, 전기ㆍ전자 등 관련 학과 출신을 뽑아 재교육해서 쓸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업계는 경쟁력 약화를 걱정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국내 업계가 '사람 빼 가기' 경쟁을 펼치는 사이 나라 밖에서는 더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미국, 일본, 독일 등 선두 나라들은 후발 기업을 상대로 한 특허 소송을 늘리는 등 진입 장벽을 높이고 있다. 지경부에 따르면 현재 디자인, 제조 기술, 형광체 등 60건 이상의 특허 분쟁이 진행 중이다. 선두 기업들은 또 전략적 인수 합병(M&A), 특허 제휴를 통해 후발 주자를 견제하고 있다.
미국, 일본은 각각 '차세대 조명 이니셔티브(2007년)', '21세기 광(光) 프로젝트(2006년)' 을 통해 기존 에너지원을 LED로 대체하면서 국가적으로 LED 분야를 키우고자 집중 투자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 대만은 '싸게 많이 만드는' 전략으로 한국을 무섭게 뒤쫓고 있다.
선두 국가와 후발 주자들의 샌드위치 공격에 맞서 우리 정부와 LED업계도 2012년까지 연구개발(R&D), 설비투자 등에 4조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투자만 늘리는 건 답이 아니라며 에피 웨이퍼, 칩 제조 등 뒤처져 있는 핵심 분야를 집중 공략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LED는 '에피(Epi) 웨이퍼 제조→칩 생산→패키징→모듈' 공정을 거치는데 우리는 이 중 에피 웨이퍼 제조와 칩 생산에서 뒤처져 있다는 평가이다. 현재 1,700개 넘는 LED 관련 업체 중 이 분야 관련 업체는 10개 남짓일 만큼 토대도 약하다.
장비 부족도 풀어야 할 숙제. 특히 LED칩 제조에 꼭 필요한 유기금속화학장착장비(MOCVD) 확보가 시급하다. 남옥현 한국산업기술대 LED 센터장은 "국내외 업체들이 LED 생산량을 늘리고 있는데 대당 40억 원이 넘는 MOCVD는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며 "미국, 독일의 2개 회사가 독차지 하는 상황에서 국산화를 서두르지 않으면 2012년까지 1조6,000억 원의 비용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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