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설치미술가 강익중(50)씨는 한글, 달항아리 같은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로 작업한다. 7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 '바람으로 섞이고 땅으로 이어지고' 개막을 위해 내한한 강씨는 "사람들이 왜 계속 옛날 이야기만 하느냐고 하는데 어린 시절의 기억이 너무 많다"며 웃었다. "어릴 때 집에 있던 달항아리, 문풍지 사이로 들리던 물소리, 골목길과 산의 모습들이 생생해요. 그런 것들이 자꾸 옛날 슬라이드 필름을 꺼내 되새김질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갤러리현대 신관과 구관에 걸쳐 총 180여 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강씨가 국내 화랑에서 14년 만에 여는 개인전이다. 그간 아이들의 그림을 모아 만든 대형 벽화, 광화문 공사 가림막 설치 작업 등으로 강씨의 작품을 국내에서도 가끔 볼 수 있었지마 그의 다양한 작품세계를 한 자리에서 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
신관 1층에는 먹선을 그은 작은 나무조각들을 모아 만든 작품 '산', 그리고 조선이 건국된 해를 나타내는 1,392개의 작은 달항아리를 바닥에 둥글게 설치한 '1,392개 달 항아리'가 어우러져 있다. 강씨는 '산'에 대해 "뉴욕의 작업실 근처에 버려진 나무들을 주워서 만든 것"이라며 "내 마음 속 인왕산을 생각하며 그렸다"고 말했다.
먹으로 그린 산의 형상 사이로 흰 물감을 짜서 흘린 '폭포' 역시 국내 관객들에게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이다. "좋은 그림은 쉽게, 또 우연히 나온다는 사실을 실감했어요. 폭포를 그리려고 오랫동안 고민했는데 그냥 물감을 흘려버렸더니 폭포가 되더군요. 자연을 그릴 때는 자연을 따라 갈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작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3인치 그림'도 전시에 나왔다. 아르바이트로 바빴던 가난한 유학생 때, 가로 세로 3인치의 작은 캔버스를 만들어 갖고 다니며 지하철에서 그림을 그렸던 시절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전시장 한쪽 벽을 가득 채운 '내가 아는 것'은 그가 1995년부터 원색의 크레용으로 계속 써내려온 한글 문장들로 이뤄져있다. 작은 나무판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전체적인 색채와 형태도 아름답지만,'라면은 양은 냄비에 끓여야한다' '정말 필요한 것은 별로 없다' 등 그의 유머와 감성이 담긴 글을 하나하나 읽는 것도 재미있다.
구관 전시장은 온통 달항아리 그림들로 가득하다. 나무판 위에 템페라를 바르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린 뒤 사포로 갈고 플라스틱을 입히는 작업을 반복해 완성된 작품들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 달항아리들은 때로 하늘, 때로는 달이 되기도 하며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그는 2004년 일산 호수공원에 '꿈의 달'이라는 거대한 공을 띄우는 작업을 하던 중 바람이 불어 찌그러진 공에서 이지러진 달항아리의 모습을 떠올린 후 줄곧 달항아리를 그리고 있다고 했다. "모든 아름다운 것은 순수와 당당함을 동시에 가졌다고 생각해요. 달항아리와 아이들의 그림이 모두 그렇죠. 제 작품 역시 순수하고 당당하기를 바랍니다."
그는 1997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받은 후 개인 작업보다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더욱 힘을 쏟아왔다. 특히 2004년 미국 신시내티 병원을 시작으로 서울 아산병원, 최근 충남대병원 소아병동으로까지 이어진 설치 작품'희망의 벽'은 그가 가장 애정을 갖고 있는 작업이다. 어린이 환자와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의 그림 수천 점을 모은 '희망의 벽'에 대해 강씨는 "아픈 아이들에게 그들은 혼자가 아니라 꿈으로 서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며 "100개가 넘는 병원으로 작업이 계속 번져나가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인전 개막 후 곧바로 중국 상하이로 떠난다. 5월 1일부터 열리는 상하이 엑스포 한국관 제작의 마무리를 위해서다. 한글 작품 '내가 아는 것'을 인쇄한 알루미늄판으로 한국관 외벽을 덮고, 내부에는 '폭포' 작품을 설치한다. "벌써부터 한국관에 대한 반응이 무척 좋다고 해요. 제가 참여해서가 아니라 한글로 한 작업이기에 예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전시는 5월 2일까지. (02)2287-3500
작은 나무조각들을 붙여 만든 작품 '산'과 '1,392개 달항아리' 앞에 선 강익중씨. 갤러리현대 제공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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